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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08. 2017

2. 책 <서른 살의 사춘기> 연재 (2)

(2) 서-어른이 되면

이십 대가 꺾이면 눈 앞에 서른이 닥쳐온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냐고? 그냥 닥치고 서른이다.

걱정할 것 없다. 조급해할 것도, 속상해할 것도 없다. 막상 서른이 되면 별 거 없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서른이라면 왠지 거리감 있는 어른처럼 느껴졌던 선배 혹은 오빠, 형, 언니, 누나가 알고 보면 뱃살(나잇살)만 나온 2.5차 성징(이런 건 없다)의 당사자였을 뿐, 이십 대 중반과 ‘생각보다’ 큰 차이는 안 난다. 이제 곧 서른인데, 아직 어린것만 같은 자신이 부끄럽다거나, 서른이 두렵다거나 하며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서른이란 건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결국 살아내야 하는 이전과 똑같은 시간에 불과하다. 지금 내 인생에 있어 정말 필요한 건 리필 말고 리셋인데, 앞에 ‘3’은 두고서라도 ‘0’은 리셋의 느낌이 좀 나질 않나.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김광석-이등병의 편지)를 20살 직전에 입대한다고 부르고 다시 찾아온 30살이다. 이 귀한 숫자인 ‘0’에 초기화를 외쳐본다.


최승자 시인 말마따나 벼랑 끝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찾아온 서른 살이다. 마치 고장 난 영혼, 가끔은 제정신, 멘탈 붕괴가 동시에 찾아온 것만 같다. 대한민국에서 인증하는 기술자 급수가 ‘특급’이신 울 아버지도 일단 일상에서 기계가 고장 났다 싶으면 툭툭 치거나 초기화 버튼을 눌러보는 게 우선순위셨다. 우리가 살다가 게임하듯 임의로 누를 수도 없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30’이 된다.


물론 나름대로 버티며 살아온 삼십 년의 내공이 제대로 발현되게 하는 초기화이지, 무언가 통째로 기억상실증처럼 사라진다는 게 아니다. 초기화의 영점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 동안 빚어온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서른 즈음엔 이미 깨어지고, 달구어지고, 뜨겁게 견디어서 다 빚어진 그릇인 채로 영혼에 품고 있기 마련이라, 서른 즈음이 되어 그릇의 크기를 더 넓히기란 어려울 것이다. 대신, 자기 그릇에 대한 확신만 가지게 된다면 서른 즈음은 그 그릇을 계속 쌓아갈 수 있는 절호의 첫 시작점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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