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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Mar 28. 2017

그 어린 꼬마의 발악은 무시해도 된다

원래 꼬마란 그런 거니까

얼마전 청첩장을 건네던 친구가 내게 말해준 얘기가 있다. 자기 남편이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회사 상사때문에 고민이라 털어놓았더니 하는 질문이 있었단다.

"자기는 대여섯살짜리 꼬마가 막 뭐라고 하면 화가 나?"

"아니"

"그치? 그냥 그 사람은 수준이 딱 그 정도인거야. 자기가 크게 감정 상할 거 없어."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 응? 나는 화가 나는데? 라고 반문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가 지나니까
그 말의 여운이 남는 거다.

특히 우리집 캣초딩 다행이가 집안 내 온 박스를 다 물어뜯고 울고 새벽에 시끄럽게 할 때마다 너무나 화가 났었는데, 이제야 그게 관용이 적은 나 자신의 문제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관세음보살!

너는 캣초딩이고, 캣초딩은 원래(본성이) 이런 거니 본성대로 사는 걸 어느 정도는 존중하고 수용한 다음, 도가 지나치면 주의를 주고 그래도 안 되면 훈계로서 달래야 하거늘.


이처럼 어떤 관점으로 대상을 규정하느냐에 따라 나의 판단을 지배하는 직관적 감정은 그 규정된 무의식과 이성의 작용으로서 컨트롤 되어 작동할 수 있었다.

직장이든 어디든 조직 내 꼭 또라이 한 명쯤 있고,
그렇게 예쁘던 자식새끼도 미운 O살이 오고, 중2병이 도래한다. 집구석을 난장판으로 헤쳐놓는 캣초딩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눈 떠서 굳게 다짐하다가도 이내 절제된 감정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상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내 삶도 달라질 수 있다는 깨달음.

또 하나, 그렇게 해도 영 안 되겠다면,

그러니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러나 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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