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국][1916-1918][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1. 이름 : 카를 1세(Karl I)
2. 왕조 :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3. 대략의 분위기
오스트리아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 카를 1세는 전임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둘째 남동생의 손자였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생인 막시밀리아노 1세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멕시코에서 처형당했고 자식이 없었다. 거기에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외아들 루돌프 황태자는 암살을 당하면서 막시밀리아노 1세의 동생인 카를 대공이 계승 서열 1순위가 된다. 그 후 카를 대공이 사망하자 장남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에게 계승권이 이어지게 되아 그는 합스부르크 기준으로 신분이 낮았던 인물(이 인물 이름도 조피다.)과 결혼을 해 그 자식들은 계승권을 이어받지 못한다. 이런 일들이 있어도 카를 1세와 계승권은 멀어보였는데,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동생 카를 1세의 아버지 오토 대공이 죽고 프란츠 페르디난트도 그 유명한 사라예보 사건으로 암살당하면서 카를 1세는 비로소 계승 1순위가 된다.
카를 1세가 능력은 있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늪에 빠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하 오-헝 제국)을 개인 한 명이 끌어올리는건 역부족이었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헝 제국은 해체되고 카를 1세도 자연스럽게 왕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 후 그는 포르투갈로 유배를 가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4년 뒤인 1922년에 사망하게 된다.
4. 주요 키워드
(1) 프란츠 페르디난트
생전에 황태자로 불리었고 왕위를 이어받은 카를 1세보다 왕위 계승 순서(?)가 더 높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주변 가족들이 연이어 죽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카를 1세보다 먼저 왕위 계승자로 지명된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인물 자체가 왕위 유지에 큰 관심이 없었는지, 아니면 사랑에 진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결혼을 (합스부르크 기준) 신분이 낮은(?) 사람과 하게 되면서 그 자손들은 왕위 계승 후보에 들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 후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런면 때문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후계자에서 배제할 생각도 있었던거 같지만, 상황이 급해서였는지는 몰라도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황태자에 지명한다.
이 인물은 애초에 오스트리아 왕위에서 거리가 있던 인물이라 개방적이고 급진적인 성향을 가졌던거 같은데 실제로 정부 내에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등 다양한 인종 구성으로 정부 인력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 후 최종적으로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하는 대통합을 목표로 했는데, 이게 강성 세르비아인이나 주변 강성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난게 그 유명한 사라예보 사건이다. 현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영토지만 당시에는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사라예보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황태자 부인이 방문하자 강성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던 가브릴로 프린체프라는 인물이 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다. 이는 다들 아시다시피 1차 세계대전의 불꽃을 일으키는 방화선이 되었고 그 이후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뗄 수 없는 연관검색어가 되어버린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노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여전히 생존해 있을 때라 그는 다시 후계자를 정해야 했고 그렇게 결정된 인물이 바로 카를 1세다.
(2) 호르티 미콜로시
제1차 세계대전 때 나름 맹활약하면서 오-헝 제국의 해군제독 지위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모두 아시다시피 오-헝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3국 동맹 쪽이라 패전국이었고, 그래서 패전국 쪽 입장이 적용되어 왕이었던 카를 1세가 축출되게 된다. 그 후 전쟁 때 활약으로 인기가 올랐던 호르티는 오스트리아에서 해체된 헝가리 쪽으로 돌아가 세력을 장악하고 헝가리 섭정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헝가리는 해체되어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호르티가 헝가리의 전권을 행사하게 된다. 후에 히틀러와 동맹을 맺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체포되면서 그와 정적이었던 인물이 헝가리를 장악해 헝가리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고.. 결국 망명생활을 오래 하다가 타지에서 호르티는 숨을 거두고 만다.
(3) 오토 폰 합스부르크
카를 1세의 장남으로 오-헝 제국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카를 1세에 이어 황제에 올랐을 인물이다.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황태자'라는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에 오-헝 제국이 붕괴된 후에도 여기저기에서 왕위를 요청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내부에서 왕정복고 움직임이 있었을 때 요청이 있었고, 위에 언급한 호르티 미콜로시와 연합했을 때는 헝가리 왕에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나중엔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이 쪼금이나마 있던 스페인 쪽에서도 왕위에 오르면 어떨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다 거절했고 그는 2011년 98세의 나이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오스트리아 쪽에 있는 현대사 굴곡을 모두 체험한 그런 인물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그 개인의 삶은 어떠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 미루고 미루던 오스트리아 쪽 합스부르크 쪽 끝까지 드디어 왔네요. 다음부터는 다른 왕조들을 한번 쭉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쪽을 다룰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그저 재미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