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국][1848-1916][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1. 이름 :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2. 왕조 :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
3. 대략의 분위기
1848년에 페르디난트 1세가 물러나고 동생 아들인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프란츠 요제프는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가 어릴 적부터 애지중지하며 혹독하게 키운 장자였기 때문에 엄격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래서 조피 대공비가 죽은 이후에도 이러한 교육에서 얻은 고집과 오스트리아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 했던거 같다. 프란츠 요제프는 왕위에 오른 뒤 60년 이상을 제위하여 오스트리아의 상징과 같이 인식되었으며 동시대 장기간으로 집권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도 비교되기도 하였는데.. 그 긴 재위기간만큼 오스트리아 제국 근현대사를 함께 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가족사에 있어 불행한 일을 많이 겪은 인물로도 유명하다.
불행을 겪은 인물들을 아래 몇 명만 나열해 보면..
- 아내 - 엘리자베트 : 암살
- 아들 - 루돌프 황태자 : 자살
- 동생 - 막시밀리아노 1세 : 타살
- 조카 - 프란츠 페르디난트 : 암살 (1차 세계대전의 발달로 외우는 그분..)
이런걸 보면 맘고생도 참 심하게 했을거라고도 짐작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외교와 정치 등에서 삽질한 것들을 상쇄하여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우호적이고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꽤 있는거 같다.
4. 주요 키워드
(1) 엘리자베트 왕비
별명은 씨시(Sisi). 앞에서도 언급한 넷플릭스 드라마 <황후 엘리자베트>의 주인공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부인. 드라마에도 나오듯 원래 언니가 프란츠 요제프의 부인이 될 예정이었으나 프란츠 요제프가 언니와 같이 따라간 엘리자베트에게 반해 계획이 급변경되어 엘리자베트와 결혼하게 된다.
자유분방한 성격이 있던 엘리자베트는 합스부르크 엄격함의 상징이었던 시어머니 조피 대공비와 끊임없이 갈등을 겪으며 자연스레 남편 프란츠 요제프 1세와도 멀어지게 된다. 그 후 그녀는 자유롭게 여행을 다녔는데 스위스를 여행하던 도중 한 인물에게 암살을 당하게 된다. 프란츠 요제프도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먹고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시시였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2) 막시밀리아노 1세 황제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동생으로 프랑스의 주선으로 뜬금없이 멕시코 괴뢰정부의 황제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1년도 안돼서 사정상 멕시코에서 발을 빼게 되고 막시밀리아노 황제는 타지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만다. 결국 그는 기존에 있던 베니토 후아레스라는 대통령에게 제압되게 되고... 본보기로 후아레스는 막시밀리아노 1세를 처형을 하려고 하자 유럽 각국에서는 반발의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무척이나 소극적이어서... 막시밀리아노 1세를 멕시코로 몰아넣은 프랑스나 형의 국가인 오스트리아나 적극적으로 구출하는 데는 미온적이었다. 결국 그는 비극적으로 처형되기에 이르고 그러고 나서야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무척이나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9세기 역사를 보다 보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묶여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하 오-헝 제국)이라는 이름부터 혼종의 느낌이 드는 국가가 만들어진게 바로 이 때다. 오스트리아는 자신의 국가에서 두번째로 많은 인구를 구성하고 있는 헝가리를 포섭하기 위해 헝가리에 이 같은 나라 형태를 제시했는데 제안을 받은 헝가리 내부에서도 이를 두고 찬반논쟁이 심했던거 같다.
'헝가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 vs '공식적으로 오스트리아 밑으로 들어가는 것'
결국 두 가지 의견으로 갈렸고 결국 서로의 이해가 맞아 들어갔는지 전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오-헝제국'혼종제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점점 민족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에 이렇게 역 방향으로 가는 혼종 제국은 오래갈 수 없는 법. 우여곡절 끝에 이 국가는 제1차 세계대전 무렵까지는 존속하나 오-헝제국은 패전국 쪽인 동맹국 쪽에 붙는 바람에 전쟁 후 패전국의 입장이 되어 결국 해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