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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아일보 Jan 12. 2017

뒤늦게 영화 '아가씨'

"볼까 말까" 선택은 코우즈키(극중 조진웅)의 욕망에 끌리는가에 따라

*연재를 시작하며...by 모나미 든 김 기자 / 2017년 1월12일.

키보드 위, 얌전하던 제 손가락이 야성미로 불끈합니다. 깐깐한 선배의 간섭 없이 타자칠 수 있다니. 억누르던 싸이 감성마저 폭발할듯. 영화 문학 시사 등 분야를 막론하고 재능낭비할 생각입니다. 마감 걱정 없이 끄적끄적. 반갑다 내 잉여 포텐들아! 보면 딱 시간 낭비인 연재글, 시작합니다. 잉여력을 충전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 아래는 스포성이 다수 포함된 글 입니다.



영화평론계엔 손꼽히는 인물이 많습니다. 일단 폭넓은 교양에다 쫀쫀한 글 솜씨까지 겸비한 이동진 평론가가 떠오르네요. 그는 1993년~2006년 조선일보 영화 담당 기자로 활약한 선배 기자이기도 합니다. 동아일보에도 소문난 기자가 한 명 있죠. 2004~2016년 영화 칼럼 '무비홀릭'을 연재한 이승재 기자입니다. 관점을 비틀어 영화를 쉽게 또 색다르게 해석해 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분입니다. 거기에다 박찬욱 감독처럼 명필로 소문난 영화 감독도 많아서 사실 뜨내기인 제가 나설 자리는 없어보입니다.


그럼에도 첫번 째 끄적임을 영화 비평으로, 그것도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자 미장센의 대가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 작품을 선정한건 일종의 선전포고입니다. 제 안의 알을 깨기 위한. 데미안의 성장 스토리를 꿈꿨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마음의 고삐를 풀고 이 분야 저 분야에서 날뛰려면 일종의 통과의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본문이 아닙니다. 네. 그러니깐 보면 시간 낭비인 글 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


사정상 아주 뒤늦게 봤습니다. 그리고 묵직한 전율을 맛봤죠. 상한 줄 알았지만 참을 수 없는 갈증에 한 입 베어문 사과가 '어라', 뜻밖의 단맛을 선물했다고 할까요. 이번 재능낭비는 그래서 뒤늦게 이 영화를 볼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을 한번 '보는 쪽'으로 낚아보려는 것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댓글에 "이 글 다 보고 나니 결심했어요. 안 보기로. 글도 이상하고. 아오 시간낭비했네" 이런 글이 달려도 괜찮습니다ㅎㅎ정신승리가 취미니까요.)


첫번 째 끄적끄적. 뒤늦게 이 영화 아가씨, 볼까 말까?  
보라! 코우즈키(조진웅)가 변태같은데 왠지 끌린다면


철저히 코우즈키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해석했습니다. (이건 대놓고 변죽만 울리겠단 소리임. 심지어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에 관한 평 한 줄도 없음) 그는 영화 속 주요 내러티브인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소매치기 하녀 숙희(김태리)가 사랑을 꽃피우는 물리적인 공간을 설계한 인물이죠. 일본과 서양 건축 양식이 결부된 코우즈키의 고립된 저택. 그리고 은밀한 서재. 그 서재의 입구엔 똬리를 틀고 고개를 빳빳이 쳐든 뱀 동상이 문지기처럼 서있습니다. (이 뱀은 남성 성기를 상징함과 동시에 복선) 후반부에 공개되는 서재 지하, 비밀의 방(히데코의 지옥) 또한 마찬가지.


"뱀, 뱀, 뱀! 명심해라 뱀이 '무지의 경계선'이다."
-코우즈키 대사

#23. 한 시가 되면 자신을 데리러 오라는 당부에 별채에서 수업 중인 히데코를 만나려고 숙희가 서재 안으로 들어서는 장면.


두 여인이 갈등하며 헤집는 이 모든 공간은 코우즈키의 세계관이 집약된 곳이자 함정입니다. 그렇게 곳곳에 지뢰밭처럼 서스펜스를 깔아놓고, 그는 스토리 밖으로 떠납니다. 전개상 두 여주인공의 사랑이 무르익어야할 때쯤 적절하게. 그리고 다시 나타죠. 후반부 관객이 지칠때쯤 폭풍처럼요.


코우즈키 영감이 함경도로 떠나기 전날이었다. (곧바로 다음 차가 들어와 멈춰선다. 코이즈키와 가토 집사가 뚜벅뚜벅 걸어가 차에 탄다) 백작은 먼저 떠나는 시늉만 하고 저택 주변에 숨어있기로 했다.

#51. 코우즈키 저택 앞. 금광채굴권 정리 문제로 함경도로 떠나는 장면.


코우즈키는 자기부정의 캐릭터입니다. 조선인임을 부정하고, 안에서 꿈틀거리는 저급한 변태성을 부정하죠. 앞서 묘사한 저택의 외피는 자기부정의 반작용으로 설계됐습니다. 되고 싶은 것들, 고풍스런 일본인 귀족. 하지만 그 저택 깊숙하고 은밀한 곳엔 그가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자기부정의 본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죠. 그런면에서 연민이 느껴지지만 히데코를 향한 피그말리온적 집착을 보고 있자면 치가 떨립니다.


15세 히데코. 소리, 접촉방법, 지속시간에 따른 분류 등이 있습니다. 첫번째 입맞춤과 다른 모든 입맞춤을 구별했던 단순한 분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코우즈키. (끄덕이며) 대상과 목적, 행하는 부위에 대한 분류도 있었지. 하지만 심장의 떨림의 강도로 분류해야 한다고 했던 이탈리아 학자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계속해 보아라.

15세 히데코. ...우리는 그것들을 합쳐 길고 높은 소리를 내는 슈마츨라인을 만들 수 있다. 시인은 그것을 몰레스모르시운쿨라스, 곧 부드럽고 사랑스런 깨물음이라고 한다.

#73. 서재 몽타주2. 어린 히데코를 훈육하는 코우즈키


*코우즈키 개괄:  히데코의 이모부이자 후견인이다. 일본식 이름은 노리아키. 일제 치하 조선인으로 일본을 동경하여 통역관으로 조선총독부의 끄나풀이 됐고 금광채굴권을 받아 부자가 된다. 일본의 몰락한 귀족 가문의 딸과 결혼해 성씨까지 일본식으로 바꾼다. 서책 수집이 취미. 일본 귀족들을 저택에 초대해 낭독회를 연 뒤 서적을 판매한다. 이때 낭독자는 히데코의 이모(자살), 그리고 히데코. 그는 외국에서 서책을 대량으로 들여오기 위해 재산이 필요했고 그래서 처조카인 히데코와 결혼해 재산을 빼앗으려 한다.


코우즈키의 서재. 영화 예고편 캡쳐


박찬욱 감독은 원작인 세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후반부에 들어서 독창적으로 각색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아본 세라 워터스가 박찬욱 감독에게 "원작에 '기반을 뒀다(based on)'라고 하기 보단 '영감을 받았다(inspired by)고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정도이죠.


하지만 촘촘히 스며들어있는 복선과 반전, 꽉찬 내용 전개는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캐릭터가 바로 코우즈키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설명한 이영화의 내화면 외화면의 설계자가 바로 코우즈키이기 때문이죠. 영화 속 두 여주인공은 코우즈키의 욕망과 자기부정이 마련한 무대 위에서 (후지와라는 조명 설치?ㅋ 코우즈키와 후지와라는 양념과 소스. 찰지게 버무러져 이야기의 방향을 끌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서사를 꾸며갑니다. 또한 그의 왜곡된 훈육은 히데코가 결국 숙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하는 촉매제가 됩니다. 부화장이라 할까요. 그 둘의 사랑이 완성돼 가는.


그래서 뒤늦게 망설여진다면 추천드리는 방법이 먼저 예고편을 보고, 코우즈키를 유심히 살펴보시라는 것. 몇 초 안 나온다는게 함정입니다. 아니면 줄거리라도. 그리고 곰곰이 가슴으로 따져보시면 어떨까요. "뭐야 저 눈빛 변태? 아오 근데 뭐지 진짜...?" 한다면 보고 나서 후회는 없을 듯 합니다. 원작 핑거스미스를 봤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레즈물이 꺼려지는 분들도 딱히... 


끝. (뭐야 진짜냐고요?)


네. 서론 보다 본론이 짧고 봐도 도움 안 되고 대신 시간만 낭비하는 잉여충전소(잉충소) 첫번 째 글이 끝났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마무리가 뜬금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 쓰고 나면 잉여력이 고갈돼 진짜 일을 하고 싶어지거든요. ㅎㅎ하지만 창조력의 원천이 잉여. 오늘의 망글을 계기로 더더욱 쓸데없는 글들만 써내려 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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