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구들 6호] 으네제인장의 추천도서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정기 간행물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매월 15일에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창밖의 뙤약볕도, 매미소리도, 책에 빠져든 순간에는 모두 사라진다. 사계절 중 봄으로 시작하는 <식물과 나>는 책을 읽다 눈을 감는 순간 그 계절의 나로 옮겨놓는다.
내가 생각하는 봄은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봄인데 <식물과 나> 속 봄은 조금 더 햇살이 따뜻해지고 난 후, 세상이 연둣빛으로 변한 뒤의 봄을 말하는 듯하다. 책 속의 그려진 식물들을 떠올렸을 때 그 배경에 있던 햇살과 풀들의 색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건, 그래서 식물이 살아가는 그 계절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아름다운 그림을 떠올릴 때와는 다른 감동이 있다. 식물 세밀화가인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장면들을 품고 있는 걸까.
하나의 식물을 보면서 그 식물의 꽃과 가지, 열매, 뿌리 등 모든 요소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는 식물 세밀화자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식물이 가진 이야기와 식물을 보고 떠올리게 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털어놓는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들의 새로운,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뿐 아니라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도 함께 알아가다 보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식물뿐 아니라 작가에 대한 친밀감도 짙어진다.
식물을 그리다 보니 식물을 닮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는 책 속 작가의 말처럼 책의 흐름도 식물을 닮은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식물의 모든 요소처럼 어느 이야기 하나 앞서는 것 없이 계절의 흐름에 따라 고르게 나누어져 있는 거다. 식물을 닮은 작가가 쓰고 그린 책이라 그런지 책 또한 식물을, 자연을 닮은 것이 신기하다.
이 책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있는 듯, 도시와 자연 모두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흔히 볼 수 없는 사계절 식물 모두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의 자연이 아닐까 싶다. 식물과 동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완전한 도시도,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자연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요즘 세상이니까 말이다.
이소영 식물 세밀 화가의 책은 자주 보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식물의 새로운 이야기를 알아가게 되는 재미가 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책에서는 할미꽃에 대한 에피소드가 그러했고, 생강 꽃에 대한 에피소드도 그러했다. 내겐 겨울보다는 이른 봄꽃이라 여겨졌던 생강나무 꽃은 자주 보아 그 모습을 알고 있었는데 정작 생강의 꽃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겨울 편’에서 지금껏 내가 오며 가며 봐왔던 꽃이 생강 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살짝 충격을 받았다.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어떤 대상을 볼 때와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있을 때 관찰을 시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는 만큼 더 보이고, 아는 만큼 더 애정이 간다는 말, 이소영 식물세밀화가도 책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식물을 보며 예전과는 다른 관심을 가지고 한 번 더 눈길을 주게 된다.
<식물과 나>라는 제목처럼 이번 책은 식물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조금 더 영역을 확장해서 자신의 이야기와 동물의 이야기, 그리고 자연과 좋아하는 대상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공감할 이야기들도 함께 담겨있었다. 특히 ‘봄 편’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좋아하는 마음’에 있어 중심으로 둘 것이 ‘나’인지 ‘좋아하는 대상’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하면서도 자주 잊게 되는 부분이라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식물 세밀화가’라는 직업적 특징 때문인지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대상을 자세히 가까이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된다. 우리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이 가지는 유기적인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식물의 정보를 딱딱하지 않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책은 언제나 익숙한 주변 환경을 새롭고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그냥 스쳐 지나가며 보던 꽃이 더 예쁘고 애틋하게 보이는 경험, 매일 먹던 과일을 보며 기후변화를 체감하는 경험을 이 책을 보고난 후 하게 되었다. 눈에는 익었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식물들의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사연들을 알고 바라볼 때와 모른 채 바라볼 때의 느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작가의 책을 읽고 직접 경험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쓴이. 으네제인장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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