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담긴 이야기는 결국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

<위대한 공존> 서평

by 동반북스

* 본 글은 동물책을 취급하는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의 서평단이 올려준 글입니다.


이 책은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를 중심으로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고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기록이 남지 않은 선사시대의 예술품을 바탕으로 인간과 동물이 서로 존중했다는 사실을 유추해내고, 시간이 지나 동물을 가축화했을 때에도 개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일 만큼 유대관계가 깊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현재의 지배-피지배 관계가 되어버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비판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가져야 할 도덕 윤리적 태도를 강조 혹은 강요하지 않는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저자와 함께 역사적으로 살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생각과 태도가 자리 잡게 된다. 그렇기에 정말 가치 있는 책이다.


<개, 염소, 양, 돼지, 소, 당나귀, 말, 낙타>와 인간의 관계는 다양하게 정리된다. 동물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 동물을 통해 문화를 확산시켜가는 이야기,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무차별적으로 이용하고 학살하는 이야기 등 책에 담긴 이야기는 결국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이다. 역사적으로 인간과 동물이 분리된 적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간과 동물이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공존해야 한다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의문과 고민이 많아진다. 동물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이 이만큼 발전했을까? 인간의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물을 마음껏 이용해도 되는 걸까? 인간의 역사에서 어느 순간 자리 잡은 종차별주의가 부끄러워진다.


결국 지배-피지배 관계로 자리 잡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상호보완적이며 동반자적인 관계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모두가 파괴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동물 없이 인간은 살 수 없지만, 인간 없이 동물은 살 수 있다는, 아니 오히려 더 번성한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존중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내게 온 문장


- 관계는 화려한 건물이나 걸작 예술품보다도 역사적으로는 더 중요한 본질이다.


- 인간과 그들이 사냥한 동물 사이의 강력한 유대를 반영하는 상징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런 관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우월하지도 않다.


- 사냥꾼은 동물 사이에서 날마다 동물을 보며 살았고, 동물과 쉽게 친해졌다. 사냥감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며 함께 생활하는 모습이 오늘날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게 이런 피조물은 연발 라이플총이나 석궁으로 쏘아 죽이는 한낱 동물이 아니었다. 저마다의 습성과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살던 개체였고, 그런 개체들이 여러 달 동안 근처에서 작은 무리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야생동물을 대하는 오늘날의 태도는 어떠한가?


- 크기에 관계없이 생물은 모두 산 족 세계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삼라만상과 초자연적인 질서 속에서 저마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사냥꾼이 속한 활기차고 역동적이며 초자연적인 세계에서도 제각각 뚜렷한 정체성과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


- 동물과 인간은 같은 세상에 살면서, 몸이나 마음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얽혀 있었다. 인간과 동물은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였다. 지배와 피지배는 인간이 온갖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관계다. 인간의 사회적 영역과 나머지 자연으로 양분되는 세계는 투과성이 있어서 쉽게 넘나들 수 있었다. 수렵인에게 있어서 동물-인간의 관계에 관한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그들과 함께하는 동물을 배려한 인간의 역사를 쓰는 일이다. 이는 동물과 사회, 자연과 인간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우리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오늘날 검토해야 할 것은 인간이 동물과 맺고 있는 관계의 특성이다. 이 특성을 과거 수렵인들은 매우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 싱어와 다른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종에 속하는지에 따라 생명체를 차별하는 행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는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다. 동물에게도 이해관계가 있으며, 동물의 이익이 반드시 인간에게 득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 우리 인간은 다른 종을 억압하고 길들여서 인간의 역사 형성에 이바지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당연히 동물은 자신들이 받는 처우에 반발할 수도 없고, 사람처럼 투표를 할 수도 없다. 이는 인간에게 책임감을 안겨준다. 동시에 도덕성과 무자비한 착취, 이타주의와 이기심이 대립하는 고통스러운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이 딜레마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길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할까? 여기에는 한결같으면서도 늘 벼화하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 현재 대부분의 동물은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먹힌다. 그리고 한때 동등한 동반자의 위치에서 지구 역사를 변화시켰던 여덟 종류의 동물은 그들의 요구가 아닌 우리의 요구대로 다뤄지고 있다.



글쓴이. 동반북스 서평단 박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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