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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반북스 Jun 15. 2021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작은 친구들 4호] 으네제인장의 추천도서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작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의미 있고 재미 있는 것들을 생각합니다. 매월 15일에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열렬한 덕질은 내게 이로움을 주지만 나의 덕질이 나 뿐만 아니라 세상에도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기린 해부학자이자 책의 저자인 군지 메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거나 이 세상을 구할 연구를 하겠다는 고상한 뜻을 품고서 연구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213쪽)’으로 기린 해부학자가 되었고 연구를 통해 기린의 여덟 번째 목뼈를 발견하게 되었다(일반적으로 목뼈는 일곱 개의 경추로 이루어져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기린은 예외적으로 제1흉추도 목뼈로써 움직인다는 사실을 군지 메구가 밝혀냈다). 


‘덕질도 무엇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이렇게 직업이 되고 또 세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답니다’의 표본 같아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괜히 덕후 동지로서의 뿌듯함과 나도 저런 덕질을 하고 싶다는 부러움을 양쪽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읽기 전에는 해부학이라는 단어 때문에 조금은 어려운 책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으나, 막상 읽어보니 전문용어가 많이 등장 하지 않고 무엇보다 기린의 목뼈를 연구하는 과정 하나에만 집중하고 있어 느닷없이 대량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지식으로 인해 부대낌을 경험해야 하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연구를 통해 한 개인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 기린에 관심이 없거나 해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도 충분히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살아가는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에 대해 다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자주 보는, 그래서 친근하게 생각하는 식물이나 동물이라고 해서 그들에 대해 우리가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기린 역시 어릴 적 동물원에서 봤고, 동화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봤던 동물이기에 친근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나무의 높은 부분, 그리고 키가 큰 나무의 이파리를 뜯어먹기 위해 다른 동물보다 긴 목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 노란 몸통에 갈색 얼룩이 있다는 것, 짙은 보라빛의 혀가 매우 길다는 것과 머리 위에 작은 뿔이 있다는 것 정도 뿐 그 이상으로는 알지도,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가진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IPTV에서 기린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았느나 기린을 주로 다루는 영상는 하나도 찾지 못하게 되면서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기린의 종류가 몇 가지나 되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뿔은 몇 개고, 수명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린에 대해 알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군지 메구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는’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해부라는 행위를 하는 내내 기린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자신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해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해부를 통해 보다 기린에 대해 알고 또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기린을 제대로 알고 기린을 제대로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해부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도 피하지 않고 제대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다만 뼈에 붙은 살 부분을 ‘고기’라고 표현거나 ‘삶는다’고 표현하는 부분은 조금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번역의 문제인 건지 원래 그렇게 표현하는 건지 궁금했다. ‘살’이나 ‘끓이다’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는 없었던 건지, 마치 먹을 것을 대하듯 하는 어휘 선택에 원글이 궁금해지는 부분이었다. 


어떤 대상을 귀엽게 여기고, 애정을 가지거나,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을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 분위기지만 덕질을 하다보면 애정이나 감정이야 말로 어떤 행위의 원동력이 되거나 도화선이 될 때가 많다. 한 마리의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하나의 작은 동물에게 갖는 감정이 그 종 전체를 향한 애정이 되거나 그것을 넘어 전체 동물을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번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머물지 않은 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거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마리의 동물 혹은 한 종의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 책의 저자처럼 꼭 연구를 하는 일이나 종의 비밀을 밝히는 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작은 동물을 접한 후 그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한다. 우리보다 하찮은 존재 이거나 인간에 종속된 대상이 아닌 우리와 충분히 닮은,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과 모습이 다르고 감각의 방식이 다를 뿐 생명의 가치는 동등한 독립된 개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다양한 개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깊이 알아가길 바라는 건, 어떤 대상에 대해 알아가고, 애정을 품는 일이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시도하게 되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면 애정을 가질 수 없고 그들을 위해 노력할 기회마저 잃게 된다. 그러나 일단 눈길을 주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 조금은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군지 메구가 좋아하는 기린을 위해 연구에 매달린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를 더 알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다.



글쓴이. 으네제인장

© 동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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