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10~16, 의미와 재미 펴냄, @밀리의 서재
그렇다. 언어학자는 이런 일을 한다. 언어를 소리와 구조와 의미로 쪼개서 분석한다.
만일 언어가 소통만을 위한 수단이라면 변화는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다. 소통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대의 언어를 ‘쉰’세대가 못 알아듣는다면 소통이 잘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언어의 기능은 소통만이 아니다.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들 보고 다 머랭처럼 말하라고 하면 아마 하루도 못 가서 너무 숨 막히고 피곤한 나머지 다들 영원히 입을 다물어 버릴지도 모른다. 일부러 적당히 엉성하게 말하는 데에 인간 언어 소통의 궁극적 효율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글은 우리 세종대왕님께서 한자에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우리말 한국어를 글로 제대로 표기하기 위해 고안하신 한국어 맞춤형 문자
한글에 대한 자부심은 단순히 ‘국뽕’으로 치부할 영역이 아니다. 특별히 민족적 자긍심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학술적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한글은 자타공인, 명실공히 이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체계임에 틀림이 없다
글자 하나하나가 조음기관의 조음 모양과 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각 글자가 한 음소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음소가 모인 음절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엄청나게 체계적인 문자다.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 보아왔듯이 언어순화운동은 일시적인 성공을 맛볼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말이란 통제로 제어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일어날 변화는 일어나고야 만다.
이 외에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역사의 굽이굽이에 우리편과 상대편을 구분하는 수많은 시볼렛이 존재해 왔다. 언어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은 언어가 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는데 그만큼 중요하고 효과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방증해 준다.
언어 공동체는 피의 공동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언어 정체성은 유전자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종에 상관없이 같은 지역에서 같은 말을 쓰며 같은 시간을 보낸 사회문화 공동체의 일원임을 인증해주는 표지라 할 수 있다.
캔을 캐와 ㄴ으로 분리하는 것이 한국어 화자의 언어 본능이라면, can을 c와 an으로 분리하는 것이 영어 화자의 언어 본능이다.
한 언어에 동의어가 여러 개 생기면, 각각의 뜻이 점점 특화되면서 암시의미가 달라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본적인 뜻 이외에 서로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추가하며 어휘의 활용 스펙트럼을 넓혀주어, 결과적으로 그 언어의 어휘를 매우 풍부하게 해 준다. 그 언어의 영토 자체가 넓어지는 것이다. 언어는 의사소통만의 도구가 아니라 표현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 언어의 표현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사라질 것들은 사라지고 생존할 것들은 생존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재미와 편이로 만들어진 신조어 치고 오래 가는 것이 많지 않다. 신선함을 잃으면 재미도 따라 사라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