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고 쓰다

영화 [우리들] 윤가은

2023.03.03 @왓챠

by 동참

우리 모두는 외톨이의 경험이 있다. 꼭 왕따까진 아니더라도 소외되고 끼지 못한 경험.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혹시 그 비슷한 일이 생길라면 지레 겁먹고 피하게 된다. 이야기는 11살 소녀, '이선'의 친구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옛날 생각이 너무 실감나게 떠올라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올 뻔 했단다.


[시작 장면] 피구 편을 가르며 기대에 찬 '이선'의 모습

영화의 시작부터 가슴이 답답해진다. 운동장에서 반 친구들이 모두 모여 피구 팀을 나누고 있다. 이 장면은 선이의 처지를 예고한다. 편을 나누는 게임은 철저히 서열을 결정짓는다. 나는 편을 갈라도 보았고 선택도 되어 봤지만, 특히 골라질 땐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된다. 내가 이 무리에서 어느 '위치'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피구가 시작되기 전 웃음 가득한 선이의 얼굴은 모두가 선택되어지고 홀로 남겨질땐 시무룩하게 변해 있다. 가장 마지막, 선이는 마치 떠밀리듯 골라지고선, 곧이어 선을 밟았으니 나가라는 핀잔을 듣는다.


선이는 친구가 없다. 꼭 왕따라는 말로 선이의 처지를 뭉뚱그리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 선이에게 전학생 '한지아'의 등장은 너무나 반갑다. 여름방학동안 선이는 지아를 집으로 초대하여 일주일이나 같이 보내기도 하고 그런 선이를 위해 지아는 선이가 갖고 싶어하던 색연필 세트를 훔치기도 한다. 여기까진 흔히(?)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서로의 내밀한 부분을 공유하고 의리를 보여주는 것, 그러나 파국은 곧 들이닥친다. 지아는 할머니의 강요로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그 학원에는 이선의 반 왕따 주동자 '보라'가 다니는 곳이다.


이선(좌), 지아(우)

지아는 단단하지 못하다. 아마 그쯤의 아이들은 거의 모두 그러겠지만 지아는 분위기에 쉽게 휩쓸린다. 모두가 미워하는 아이에게 쉽게 손을 내밀 수 없다. 그래서 방학이 끝나고 2학기 첫날부터 지아는 선이를 냉담하게 대한다. 여기서 지아는 한걸음 더 나간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욱 단단히 다지기 위해 선이의 결점을 보라 무리와 공유하고 선이를 비난한다. 상처를 주기 시작한다.

나는 지아와 선이의 차이점을 단단한 가족의 유무라고 생각했다. 지아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아버지는 비록 능력이 있어 젊고 예쁜 여자와 결혼할지언정 지아에게 든든한 품이 되어주지 못한다. 선이의 부모님은 생계에 허덕이나 적어도 사랑으로 감쌀 줄 안다. 그 차이를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아에게 가족은 감추고 싶은 무엇이지만, 선이는 지아를 집으로 불러들여 같이 지낼만큼 적어도 부끄럽진 않은 것이다.


가장 맵고 아픈 상처는 언제나 가족이다. 누구나 허물 없는 사람 없듯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가족의 허물은 있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누가 순수하다고 했던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감추고 숨기던 것을 굳이 드러내 비난하고 소문을 낸다. 지아는 선이의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선이는 지아의 부모님 이혼을.


그래서 동생 '이윤'의 말은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연호'에게 매번 맞아 멍이나 상처가 생긴 동생에게, 너는 왜 때리지 않느냐고, 왜 맞고만 있냐고 선이는 다그친다. 윤이가 답한다.

연호가 때리고 내가 또 때리고, 연호가 때리고, 내가 때리고, 그러면 언제 놀아?
이선의 동생 이윤, 왼쪽 눈두덩이 멍들어 있다

즐겁고 싶은데, 행복해지고 싶은데 자꾸 서로를 때리면(상처 주면) 언제 행복해질까. 아이가 누나에게 되묻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다. 받은 상처에 대해 똑같이, 혹은 이자까지 덧붙여 돌려주면 그 순간에는 통쾌하고 후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다음엔 무엇이 남나.


그래서 선이가 취한 행동은 무척이나 용기있다. 나는 선이가 비현실적인 캐릭터라고도 생각했다. 보통 그녀와 같은 경험을 겪은 아이들은, 아무리 적극적이고 씩씩하던 아이더라도 주눅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선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주기를 멈춘다. 아마 선이를 멈추게 한 것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 지아를 향한 연민일지도 모르겠고 이제 그만 상처주기를 그만두고 같이 놀고(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꼭 열린 결말이라 잔상이 남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이와 지아에게서 나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게 자꾸만 이야기를 곱씹게 했다. 여운이 남을수록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가슴에서 오래 남아 지난 날을 되짚어보고 나의 마음 속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이야기, 그래서 이 영화를 수작이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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