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안동역 앞이 시끌시끌했나 보다. 다큐멘터리 3일 PD님과 두 여대생이 2015년 8월 15일 아침 안동역 앞에서 "10년 뒤인 2025년 8월 15일에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더랜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SNS가 들썩들썩했고 오늘 아침에는 안동역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감동과 낭만의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몰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시간 유튜브 중계에서는 만남이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누군가 폭탄을 설치했다는 정보가 들어와 중계가 끊어지고 다들 해산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학생 중 한 명이 약속에 왔다는 것을 댓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3일 특별편은 8월 22일 방송된다고 하니 꼭 본방사수해야겠다. ㅎㅎ)
우연히 했던 약속이 공기 속에 흩어지고 잊혀지지 않은 것은 방송이라는 기록에 남겨진 덕분이다. 기록을 보고 기억을 떠올려 다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낭만의 순간이 이루어진 것이다.
기록이 쏘아올리는 낭만의 순간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때는 2014년. 우연히 대학생 시절(1996년) 썼던 일기를 보게 되었다. (일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써오고 있다.)
"오늘은 (혜정이를) 안 만나는 걸로 잠정 합의했었다.
저녁에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종로 나가서 서점 가서 책 좀 보고 살까하다가 고쳐먹고 성내로 가기로 했다.
성내역 상가에 있는 꽃집에서 꽃도 사고.
장미꽃 50송이 - 2만원.
원래는 100송이를 사려고 했는데 4만원이랜다.
학교 앞은 비싸야 3만원인데.
나머지 50송이는 나중에 돈 벌어서 사준다는 셈치고(또 그렇게 얘기했다) 50송이를 샀다. 바구니에 든 걸로.
무척 좋아하더군."
일기를 읽으면서 와이프와 데이트하면서 했던 약속을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나머지 50송이의 장미 선물! 그래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로 바로 와이프에게 50송이의 장미를 선물했다. 그야말로 18년만에 지킨 약속이 되었고 와이프는 정말 행복해했다.
얼마전에는 가족과 함께 호주 멜번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멜번은 내가 젊은 시절 어학연수 가서 와이프를 만난 곳이다. 결혼하면서 꼭 함께 다시 멜번에 가보기로 했었다. 그러나 약속은 늦어지고.. 그러다가 올해 여름 드디어 장성한 두 딸을 데리고 호주로 출발했다. 와이프가 나를 찍어주었던 사진을 들고. 엄마아빠가 처음 만나고 사진 찍어주던 La Trobe 대학 호수에서 넷이 함께 사진도 찍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인생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낯간지러운 개인사라 공개가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기록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기록 덕분에 기억할 수 있고, 기억을 추억하고, 그 추억으로 지금의 낭만을 다시 만들어낸다. 일상을 축제와 놀이로 만드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의 기록이 미래의 낭만을 만들 수 있다. 삶을 기록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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