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야기_01 김치
일제강점기,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일본에서 유학 중인 주인공이 서울까지 가면서 겪게 되는 여정을 그린 염상섭의 대표 근대문학 작품 ‘만세전’에는 주인공이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찾는 반찬이 있었다.
그 위급하고 답답할 수 밖에 없었던 찰나에도 오랜만에 도착한 고국의 ‘밥’이 그리웠을 터. 그러면서도 떠올리는 것이 ‘김치’였다.
이처럼 우리에게 그것은 한 끼 ‘밥’을 마주할 때 혹은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 머무를 때 무의식적으로 동행하는 소중하고 그리운 존재이다.
최근 이 김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김치 무역은 적자를 기록하고 있고 수입되어 공급되는 김치마저 그 위생과 맛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김치는 워낙 방대한 범위의 소재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우리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영역을 부담없고 간단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만 다루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김치의 계속된 변화.
핵심은 염도와 온도 그리고 젖산 발효
©️OOSASA (촬영장소 뮤지엄 김치간)
이 땅에 처음 ‘김치 Kimchi’가 등장한 것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료와 기록에 따라 대략 추정할 수 있을 뿐인데, 예를 들어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에서 채소와 소금을 이용하여 뛰어난 발효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내용 등이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초창기 채소의 ‘가공’은 겨울철 접하기 힘든 채소를 미리 소금에 절임 salting하여 보관을 길게 함이 주목적이었다. 이러한 식품 가공방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었다. 서양의 ‘피클’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하지만 김치의 핵심 발효과학은 단지 ‘절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젖산균 lactic acid bacteria의 번식으로 배추의 당분 sugar 을 젖산 등의 유기산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 그 비결이 있다. 우리가 김장의 과정에서 젓갈류나 생선류 등을 첨가하는 것은 그것이 젖산균의 아미노산 그러니까 김치 유산균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도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김치를 각 가정에서 직접 담근 후 김치냉장고에 바로 넣을 경우, 시간이 지나도 그 맛이 쓰거나 질긴 식감을 겪게 되는데 이것은 처음부터 1 내외의 저온에서 발효와 숙성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발효속도가 늦어지거나 젖산균의 활동이 줄어들어 우리가 기대하는 김치의 맛을 얻기 힘들고 쓴맛과 질긴 식감 혹은 변색된 배추절임을 눈과 입으로 접하게 된다.
전통김장 방식에 쓰이는 다양한 김장독(항아리)
©️OOSASA (촬영장소 남산골 한옥마을)
일반적으로 소금농도 1~3%, 10 내외의 환경에서 하루 정도 선 발효 시킨 후 1~4의 김치냉장고에 넣어 주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김치 발효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김치냉장고’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김장 후 초겨울 땅을 파고 김치 장독을 묻었던 그 조건과 거의 동일하다. 김치냉장고가 그 땅속 ‘김치 장독’을 거의 완벽히 구현했다는 평을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젖산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이 유산균(젖산균과 같은 말)은 이처럼 부패균을 억제하면서 보존 기간을 늘려 주고 김치 특유의 향미를 담당하는 고마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푹 익은’ 김치를 선호하는 때도 있는데, 영양학 측면에서 이는, 과대 숙성을 넘어 부패단계에 진입한 김치를 섭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패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은 김치의 유산균이 크게 줄어들거나 거의 없는 상태이고 상대적으로 부패세균 등의 증가로 에탄올 ethanol이나 암모니아 NH3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
정작 국내에서는 홀대
배추김치 ©️세계김치연구소 제공
김치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7세기를 전후하여 등장한 빨간색 고추 덕택이다. 게다가 흔히 칭하는 김장김치(배추김치)는 현재 널리 사용되는 결구형 배추가 17세기 이후 중국을 통해 들어오고 조선의 환경에 맞게 육종되어 1900년대에 들어서야 완성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를 통해 김치의 역사를 단지 지금의 ‘김장’ 김치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나는 채소에 첨가되는 재료 또한 다양해지면서 각각의 특성을 진화시켜 왔던 고유의 ‘시간’과 ‘지식’ 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발효를 통해 겨우내 유산균과 비타민 등의 자연스러운 섭취를 도왔고 이것은 지금도 세계가 인정하는 한민족의 전통문화다.
일제강점기 김장모습을 담은 당시의 엽서
©️세계김치연구소 제공
유네스코가 2013년 12월, 한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인정해 ‘김장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2015년 3월, CNN은 세계 11대 음식박물관에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김치박물관을 선정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뮤지엄김치간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다.
단지 ‘보존’의 기간을 늘리고 ‘적당히 짠, 간이 되어 있는’ 맛을 위해 절임을 했던 그 옛날 채소절임은 이렇게 진화하여 우리와 함께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다.
최근 혼밥이나 집밥이 또 하나의 트렌드로 살아나면서 블로그 등을 통해 업로드되는 일본의 쓰케모노漬物는 우리의 김치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차원과 급이 전혀 다른 다른 종류의 ‘반찬’일 뿐이다. 또한 김치 유사상표로 취급 받으며 발효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기무치’ 역시 논할 가치는 없다.
다만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김치가, 자국에서는 오히려 냄새나고 멋이 없는 그리고 ‘흔한’ 취급받는 것을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소중한 자원과 문화유산이 왜 국내에서는 오히려 지켜가고 다루기 힘든 것인지 우리는 인지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가격’과 이것이 미치는 잘못된 대중화로의 방향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수출할 것인가 수입할 것인가
김치박물관 내부 ©️광주김치박물관 제공
16년 전인 2005년 10월 21일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은 중국산 김치 16개 제품 가운데 9개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나온 발표이었기에 더욱 그 파급효과는 컸고 직접 김치를 배추를 담그겠다는 가정이 늘면서 그해 배춧값은 껑충 뛰며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이른바 ‘김치 파동’이었다.
언론에서는 중국산 김치가 어떻게 제조되고 그 위생상태가 어떤지 연일 보도하였고 그 당시 우리는 항상 접하던 그 ‘김치’가 기생충 알을 지닌 채 내 몸에 들어갔다는 공포를 맞이 해야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어떨까.
2017년 국정감사에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국회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김치 수출액은 26%가 감소했지만 수입은 10% 증가 했다. 이 기간에 김치의 적자는 10배 이상 증가했고 그나마 버팀목이 되었던 일본으로의 수출마저 줄고 있어서 김치의 무역적자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로 수입되는 김치의 100%는 중국산으로 밝혀졌는데 대부분 식당이나 단체 급식 등의 경로로 유통되었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는 식당과 자영업자들 탓을 할 문제는 또한 아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원가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재료비’에서 별도 판매 가격을 받을 수 없는 반찬 특히 ‘김치’의 질을 국내산으로 유지하라는 말 또한 현실적인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찬 가격을 따로 받는 상거래 문화가 아닌 한국에서 이는 본질적 해결 방안이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식당에서 ‘김치’ 가격을 따로 받는다고 하면 우리는 모두 이를 긍정적이고 쉽게 수용할 수 있을까?
음식의 가격에 반찬 가격을 포함해야 하는 업주, 싸고 맛없는 외국산 김치는 먹기 싫다는 소비자 그리고 배추가격으로 큰 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농업인들과 이의 유통에 직접 관여할 수 없는 정부. 우리는 ‘가격’이라는 큰 걸림돌을 사이에 두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도 점심과 저녁 밥상 한 쪽에는 변함없이 김치 한 접시가 놓여 있을 것이다.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는 밥상의 김치
변하지 않아야 할 우리의 자세
우리의 식문화와 공동체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김치는 이처럼 외부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동시에 내부에서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김치를 잘 먹지 않아서’, ‘빵이 밥을 대신하고 있어서’ 등의 표현은 별 설득력이 없고 논리도 부족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들어 국내의 연구기관과 정부 부처 등에서 김치의 수출이나 표준화 등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고 개선하는 긍정적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는 얼마 전 국가기술표준원 KOLAS 으로부터 식품과 미생물 분야의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정 획득을 발표했다. 이는 세계김치연구소에서 발급된 시험성적서로 상호인정협정(ILAC-MRA)이 체결된 86개국 89개 시험기관의 그것과 동등한 효력을 인정받아, 중소기업의 김치 수출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다.
또한, 2017년 10월 20일 관세청은 FTA 원산지 간편인증제도를 김치, 홍삼 등 32개 전통식품에 대해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김치 등이 원산지 확인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이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의 재배 기록을 포함한 33개 종의 서류를 갖춰야 했지만, 한국식품연구원이 발급하는 서류 1장으로 원산지를 국산으로 인정받게 하여 자유무역협정(FTA)의 혜택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게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제도와 지원을 이처럼 활성화, 표준화시키며 우리 개인은 이러한 고유의 식품문화를 바라보는 인식을 다시 한번 전환하는 자세를 넓혀가야 한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니라면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뮤지엄 김치간 ©️OOSASA 촬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하얀 밥에 김치 하나만 있어도 우리는 맛있고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한 느낌을 받았다. 어릴 적 집에서 먹던 그 김치가 어쩌면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고 전량 수입해서 먹는 가까운 미래가 도래할 수도 있다.
사 먹는 것이 더 싸고 시간 대비 만족하는 가성비가 높다는 최근 조사 보도 자료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한다. 하지만 우리는 김치와 김장의 문화가 과연 ‘가성비’로만 치부해야 할 가벼운 것일까 하는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흔하게 먹던 도시락과 급식의 반찬, 사무실에서 나와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을 때 마주하는 그것.
김치는 우리가 요즘 자주 접하는 ‘맛집’이나 ‘커피’와 같은 검색어에 가려 어디선가 외롭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그랬듯 항상 변함없이 말이다. 변한 것은 단지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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