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생활. 5장

인간은 적응의 동물

by OOSASA

금요일 아침


'촤악-'

아침의 느낌이 들지만 아직 새벽의 여운이 남아있는 시각 즈음에 한 간호사가 들어와 인사를 했다. 손등의 링거 바늘 상태와 링거액이 제대로 떨어지고 있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식사 후 복용할 약 한 봉지를 두고 가며 오전에 주치의 선생님 회진이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회진이 있기 전에는 항상 직책이 있어 보이는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간호사와 그 뒤에 몇 명의 또 다른 후임들이 병실을 돌며 환자의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기도 했다. 사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나이트 근무 간호사들이 각각 병실을 드나들며 체크를 워낙 꼼꼼히 하는 것 같아 그런 또 하나의 오전 '라운딩'이 필요할까도 생각했지만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의사의 회진과 수간호사 혹은 비슷한 직책들의 라운딩이 환자 입장에선 좀 겹치는 느낌이고, 어차피 뭔가 질문이나 원하는 것을 간호부에 이야기해도 결국 담당 주치의나 교수에게 전달을 한 뒤 답을 얻어야 하는 그들이 어찌 보면 중간에 끼인 존재 같았다. 사실 아침에 더 누워 있고 싶긴 한데 우르르 들어와서 별 특별한 사항 없이 출석체크만 하는 것 같아 귀찮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차라리 의사 회진 시간에 대표 간호사가 옆에 따라다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의료 업무는 하나도 알 일이 없는 순전한 환자의 항변이다.

세안하러 가기전 식판이 도착할 수도 있다

시계를 보니 8시가 아직 안되었다. 아침식사 나오기 직전인데 미리 머리라도 감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는 혼자만의 인고의 시간이다. 왼팔 어깨를 수술한 상태에서, 물론 보조기로 꽁꽁 묶은 느낌이지만, 정말 다행인 건 새벽에 링거 바늘을 손등에서 빼줬다는 것이다. 물론 오후에 다시 항생제를 다시 주사하겠다니 그전까지는 반나절 오른팔 하나가 자유를 얻은 셈이다. 오른팔은 이제 자유의 팔이다. 이 녀석은 아침 식사가 도착하기 전 30분 동안 왼팔의 역할도 대신하며 나를 빛내줘야 한다. 의료진에게 특히 아침 회진을 도는 의사들에게 꾀죄죄한 모습을 보이는 건, 아침에 세수도 못하고 편의점에 다녀오다 아들 녀석 친구의 엄마를 길에서 마주쳤을 때보다 더 성가신 일이다.

내가 알투(R2D2)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형 링거 폴대에 세팅을 시작했다. 이 링거 폴대는 정말 고마운 존재다. 특히 핸드폰이나 폼클렌징, 비누 혹은 치약 칫솔 등을 폴대에 부착되어 있는 검은색 손잡이 받침 통에 담을 수가 있다. 이런 필수품들을 싣고 나를 질질 따라오는 모습이, 물론 내가 끌지만, 마치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R2D2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 이 녀석은 이제 알투가 되었다. 병실은 각각 독립된 욕실 겸 화장실이 있는데 알투를 들고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난 평온함을 느꼈다.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만의 프라이빗한 공간과 시간이다. 흉한 모습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지우고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도 알투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 방법이 없다. 자유의 팔은 기다렸다는 듯이 알투를 문쪽으로 붙여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내 목에 걸려있던 수건을 알투의 목 부분에 걸쳤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던 샤워기를 빼내어 세면대 위에 올리고, 이게 중요한데 물을 갑자기 세게 틀면 수압으로 인해 이 샤워기가 빙그르르 돌아 내 온몸의 환자복을 적신다. 그러지 않기 위해 자유의 팔은 세심한 배려를 보이며 수압 조절과 온도조절을 능숙하게 처리해낸다. 왼팔은 고정이므로 이제 오른팔로 먼저 머리에 물을 적시고, 다시 샤워기를 내려놓고 샴푸를 머리에 버무리고 두피를 마사지한다. 그리고 다시 샤워기로 물을 뿌리고 또다시 내려놓고 두피의 샴푸를 더 문지르고. 3세트 정도 반복하면 두피에는 남아있는 샴푸가 없이 뽀드득한 느낌이 자유의 팔에 속해있는 손가락 끝에 전달된다. 이러한 비슷한 공정으로 폼클렌징을 얼굴에 묻히고 거품을 내고 씻어내고 목덜미와 귀까지 깨끗하게 세안한다.

이 모든 과정은 꾸부정하게 상체를 앞으로 구부린 채 10분 정도 안팎으로 시행된다. 허리와 수술한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지만 이 순간만큼은 밤새 쌓인 꿉꿉함을 씻어버리는 그 상쾌함에 흠뻑 취해 행복하기만 하다.

알투의 목에 걸려있던 수건을 내려 머리를 말리고 얼굴을 닦았다. 이 모든 성가신 작업을 아침식사 전에 해치웠다는 뿌듯함과 욕실도 1등으로 사용했다는 개운함이 서로 경쟁을 했다. 샤워기의 뜨거운 물을 틀어 변기와 세면대 그리고 바닥을 모두 깨끗하게 세척해주고 환풍기를 틀어 금세 마르게 했다.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알투와 함께 욕실을 나왔다.

식사 배식은 아직 전이었고 홍삼과 척아이롤은 아직도 누워 있었다. 홍삼은 코도 골고 있었는데 그자의 침상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그 코 고는 소리가 온 병실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Covid-19 시대에 마스크나 쓰고 저렇게 코를 고는지 알 수 없었다. 신종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특히 병원의 병동과 각 병실도 그 운영방법이 더 엄격해졌다. 면회객의 수와 시간 및 횟수 제한은 물론 병실에는 들어올 수도 없고 휴게실에서만 면회가 가능하다. 또한 면회 내내 마스크를 써야 하며 환자 역시 병실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잤는데 이게 물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촤아악-'

바로 옆 침상의 커튼이 아주 빠르고 신경질 적으로 척하고 걷혔고 목발을 짚는 소리가 '삐그덕 척, 삐그덕 척'하면서 문을 열고 병실을 나갔다. 척아이롤이 아침홍삼의 코 고는 소리를 듣다 못해 나간 모양이다. 가장 성격 좋고 세상 천진난만한 사람은 군인이다. 군인은 가장 앳되 보였지만 군살 없이 키도 커서 항상 선한 이미지였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려고 목례와 자세를 잡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꽤나 몸에 밴듯한 모습이었다. 군인은 조용히 커튼을 치고 내가 정리하고 나온 욕실로 들어갔다.

아침을 열어주는 반가운 존재

시계를 보니 7시 55분. 밥 나올 시간이다. 벌써 눈치를 챈 것이, 어느새 밥 짓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고 그것이 최고조가 되면 어김없이 병실 밖 복도에서는 '드르르르르' 하면서 환자식 식판이 담긴 대형 자동 카트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여기서 식판을 하나씩 빼서 이동식 카트에 4개씩 담고, 각 병실마다 가져다주는 시스템이었다. 항상 이 밥 짓는 냄새와 반참냄새는 기다려지곤 했다.

재미있는 건, 방금 전까지 세상 떠날듯하게 코를 골던 사람들도 병실 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며 '식사 왔습니다'라는 담당 직원의 외침이 들리면 순간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 일련의 과정은 정말 어떤 매뉴얼처럼 일사불란하고 흐트러짐 없이 정확했다. 홈삼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나도 그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그저 잘 먹고 복도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며 몸을 풀어주고, 주는 약 거르지 않고 잘 먹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응이다. 그래야 결국 수술과 입원의 목적이었던 쾌유의 삶에 가까워 짐을 앞당 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환자들에게 식사시간은 인간의 식욕에 대한 기본 욕구를 다시 일깨워주는 하나의 치유의 단계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경증 수술 입원은 사실 큰 일도 아니다. 오히려 오랜만에 병원에서 난생처음 푹 며칠 쉬어본다는 말도 나올만하다. 그와 반대로 사항이 위중한 중증 환자 이상의 분들은 이 과정이 어떨지는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기에 감히 묘사할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식판을 내다 놓으면 커피나 그 밖의 주전부리들이 왔다 갔다 한다. 코로나 상황이라는 특별한 기간이기에 침상 간의 이야기 혹은 음식을 서로 나눠 준다거나 하는 '정'은 거의 사라졌다. 그것이 혹시 모를 감염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서로 간의 새로운 배려이고 자신도 보호하는 유일한 예방방법이기 때문이다.

양치질을 하기 위해 알투와 함께 욕실로 향하다 침대 위의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군인 청년은 바로 눈인사를 해왔고 나도 목례로 답했다. 물론 둘 다 마스크는 병실에서도 착용한 채로 인사를 나눴다.

욕실 문을 닫고 양치질을 시작하는데 밖에서 홍삼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근무했어?", "이것 좀 먹어봐, 이게 맛있는데 내가 다 못 먹기도 하고, 옛날 생각나네 잉."

특유의 친근감을 무기로 군인에게 다가가고 있다. 군인도 밝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 같았다.


순간 홍삼이 부러웠다. 나에게 없는 그 '무기'를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을까.

어려서부터 나는 많이 내성적이었다.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신체적 콤플렉스가 있어서 앞에 나서는 게 싫었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조용히 있게 되고, 소풍을 가서도 가운데 나가서 한 명씩 장기자랑을 하고 들어가라고 하는 선생님은 그날만큼 그렇게 밉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내적인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서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해도 나는 확실히 아웃고잉 Outgoing 스타일은 결코 아니었다. 반면 치밀함과 섬세함 그리고 차분함을 얻었다. 그러다 보니 큰 것을 얻진 못해도 크게 잃지는 않았다. 항상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가끔 호기를 부리거나 나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발견하고 그만 두곤 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데 그것만큼은 적응이 쉽지가 않았다. 대인기피증은 아니었다. 친구도 사실 또래에서는 많은 편이고 방과 후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 출근 후에도 대인관계는 너무 좋아서 와이프가 싫어할 정도였다. 하지만 공식적은 어떤 자리에서 앞에 나가 무언가 발표를 하거나 이목을 받아야 하는 자리는 변함없이 싫었다. 나도 성과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다른 팀을 지원하는 역할에 더 방향을 잡았다. 화려함을 내주고 유기적인 관계를 잡았다. 한참 지난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화려하게 저지를 걸 그랬다고.

왼팔의 저 불편함을 자유의 팔이 대신 해줘야 한다

알투와 함께 욕실을 나서는데 척아이롤이 병실 밖을 나가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휙하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정말 내가 별칭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척아이롤은 나와 인사를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 역시 적응이 됐고 오히려 편했다. 머리를 어렵게 감고, 시끄러운 룸메이트를 극복해야 하고 일상의 패턴은 소소한 것들에 감사해야 하는 삶을 병실에서 살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답게,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류가 병원 전체에 흐르고 있었고 곧 주말이라는 생각들로 가득 차 보였다. 의료진도 그렇고 환자나 방문객들도 그렇고 모두가 말이다. 사실 병실의 환자들이야 요일이나 시간은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병원에 들어오기 전 대부분을 직장생활 등을 통해 금요일을 기다리는 신체 리듬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금요일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고 주말을 피해 진료를 받으려는 외래 환자들로 병원은 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