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생활. 4장

적응해야 하는 날

by OOSASA

목요일 밤

수술이 잘 끝나고 입원실에서 눈을 뜨니 짧은 하루가 진하게 탄 커피 같았다.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를 하고 잠들었고, 깨어나서 보니 입원실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배고픔을 식판 위의 1식 4찬으로 허겁지겁 때우고 첫 양치질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가 있는 병실은 이제 모두가 꽉 찬 4인실로 변해있었고 각 침상의 담당 주치의의 회진과 식사시간이 겹치면 꽤나 분주한 입원 병동의 모습을 띄었다.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아 입원 전에 잠깐 친구가 와서 밥 좀....”

“술 드신 거예요 지금?”

“전 그냥... 맥주 한 잔만 했어요.”

“한 잔요?”

“두어 잔 했어요 조금만.”

“내일 수술하시는 분이 술을 드시고 오면 어떻게 해요,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하고 내일 수술 안될 수도 있어요. 얼마큼 드셨어요 지금.”

“아니 괜찮아요 밥 먹다가 조금...”

“그건 내일 주치의 선생님이 결정하실 거예요. 면회객분 돌아가 주시고 환자분 옷 갈아입으세요.”


한바탕 소란이 또 입구 쪽에서 났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낮에 일인실을 달라고 생떼를 쓰던 그 중년의 남자였다. 외모나 말투로 봐서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였으며 까무잡잡하고 작은 키에 걸음도 팔자이고, 어울리지도 않는 조거 팬츠 스타일의 트레이너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른 병실을 달라며 소란을 점심 입원 때부터 피우더니 기어코 사고를 치고 들어왔다. 술을 마신 환자나 같이 먹고 들어온 친구라는 보호자나 이 순간만큼은 정상적인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 저 인간이 같은 병실이라니...’


앞으로의 입원생활이 불 보듯 뻔했다. 분명 큰소리로 전화 통화할 것이고, TV도 크게 틀어놓고 시청하겠지, 그리고 코도 크게 골 거야, 엄살은 또 심해서 수술하고 마취 풀리면 끙끙거리고 간호사 호출 버튼을 시도 때도 없이 누르겠지.

병실은 밥 먹을 때가 가장 평화롭다

“아, 그러니까 괜찮다는데 왜 그러냐, 그런 거 뭣함시로 보내 싸냐.”


그새 술이 깼는지 9시가 조금 안된 밤이 되자 역시 큰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통화내용은 원하지 않게 여기저기 비집고 돌아다니는 전파처럼 온 침상을 파고들었다. 누가 홍삼을 보냈나 보다. 대단하다. 건너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받은 수술의 철심을 제거하는 간단한 과정이라 3일 뒤 바로 퇴원이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술친구와 얼굴이 벌겋게 변해 들어오고, 또 다른 지인은 홍삼을 보내고 있다. 지인과의 관계는 좋아 보이지만 타인과의 매너는 중시하지 않는 모양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시끄러운 중년을 홍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가뜩이나 까무잡잡하고 거친 얼굴이 술기운으로 인해 붉게 물들어서 땅에서 꺼낸 흙이 묻은 ‘삼’ 같았다. 아니 ‘삼’은 그 고귀함이 과하고 도라지 취급도 하기 싫었지만 그냥 편의상 홍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우리 병실은 이렇게 척아이롤, 육군, 홍삼 그리고 내가 있는 4인실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아 미닫이 문을 스르륵 열고 복도로 나갔다. 링거대를 질질 끌며 복도를 걸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병실이 불이 꺼져 있고 어떤 병실은 몇몇이 침상의 TV를 보는 듯 커튼 사이로 푸른 불빛이 조용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듯한 분위기. 자정의 시각

고요한 직선의 공간. 어둡고 적막한 이곳을 뿌옇게 밝히고 있는 파란 안내등은 마치 차가운 우주를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괜한 것에 익숙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지려 애썼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로의 첫 출근날 유난히 눈에 들어오던 낡고 좁은 엘리베이터나, 자대 배치를 받은 첫날밤에 보았던 얼룩진 천장은 피할 수 없는 상대와 익숙해져야 함을 의미했었다.

이런 기억은 언제나 반복됐다. 앞으로도 또 나타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장소,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익숙지 않은 환경 모두가 날 기다리고 있다. 나이가 어리고 많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저런 잡념을 뒤로하고, 아침에 머리는 어떻게 감을지, 밤에 샤워는 할 수 있을지 등의 생각을 했다. 팔을 움직여보니 통증이 있다.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유난히 긴 하루였는데 밤은 더 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