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생활. 3장

수술 회복 중. 그날 오후

by OOSASA

목요일 점심.


“보여?”
부모님이 흐릿하게 보이다 이내 선명해진다. 1분 만에 모든 과정이 마법처럼 끝난 것 같은 이 기분은, 누구나 수면마취가 끝난 후 항상 느껴봤을 것이다. 몇 시간 푹 자고 일어난 뭔가 이상한 이 개운함은 수술이 잘 끝났나 하는 질문보다는 눈알을 굴리며 주변의 눈치를 보게 만든다.


왼팔에 보조기, 오른손에 링거, 가슴엔 무통주사.

“여기 어디야?”
이렇게 끝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몸에는 2개의 링거와 수술부위에 별도로 꽂아 놓은 무통주사 장치가 매달려 있다. 정신을 차리니 몸은 칭칭 감겨 있다고 생각이 들고 한쪽 손에는 링거, 또 다른 한쪽 손에는 어깨 보조기 shoulder support sling 가 착용되어 있다. 양손을 모두 묶어 놓은 기분이다.

‘이런...’


4인실의 병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르다면 3명 중에서 나만 무엇인가 미라처럼 누워있다는 것이다.
바로 옆의 척아이롤은 변함없이 ‘척’ 소리 나게 커튼을 열어젖히며 들락거리고 있고 반대편 벽의 남자는 스마트폰으로 뭔가 보고 있는 것 같은 낌새다. 이 친구는 얼굴을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척아이롤과 비슷한 또래일 것으로 생각된다. 커튼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 또래다.
가운데 침대는 비워져 있다. 4인실에 3명이 있으니 그나마 상대적으로 공간의 여유가 있는 것 같다.


“식사 왔습니다.”
병실 문이 다시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고 배식을 해주는 담장자가 서빙 카트 Serving cart에 식판 4개를 담아 들어오는 게 눈에 띈다.
복강경이나 이비인후과 수술은 아니었기에 다행히 바로 식사가 가능한 상태다. 깨어나고 한 시간 정도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반가운 ‘병원밥’이 나왔다.
몸을 부축당하며 상체를 일으켜서는 다리를 뻗어 앉았다. 침대의 끝부분에 부착돼있는 접이식 테이블을 빼서 식탁처럼 만들었다. 잡아서 당겨 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이건 앞으로 혼자서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이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무엇인가 하겠다며 입원 첫날 야심 차게 데려온 그 녀석을 어제 부모님 편으로 돌려보낸 건 정말 잘한 것 같다. 양손에 뭔가 있는 상태에서 그런 짓을 하겠다고 생각했던 점이 새삼스레 순진하게 느껴진다.

수술이 끝난 직후에도 식욕이 있다는 점에 놀랐다

9시간 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수술을 하고 나와 입맛은 꽤 좋은 편이다. 다음엔 계란말이라도 해오겠다며 부모님은 집으로 귀가했고 이제 혼자다. 한 손은 못쓰고 다른 한 손은 링거가 꽂혀있고 이 상태에서.

‘세수는 어떻게 하고, 대소변은 어떻게 보지?’
난감했다.

“내일 하고 금요일은 못 오고 토요일 아침에 올게.”

“어. 알았어.”
병실을 나서는 엄마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고, 물론 두 손가락으로 겨우 잡히는 링거 폴대 IV Pole를 질질 끌면서, 병실로 돌아왔다.
침대에 앉아서 저녁부터 시작될 이 불편한 일주일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멍하니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본다.


‘부모님’이라는 단어는 남에게 표현할 때 주로 쓰는 말이고, 사실 나는 여태껏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존칭을 당사자인 당신들에게 쓴 적이 없다. 왠지 어색하고 입에 달라붙지도 않는 것이 약간 낯 간지럽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40이 넘고 결혼까지 했으며 아이들까지 있는 한 가장이 할 소리인가 싶지만 사실이다.

‘엄마’, ‘아빠’가 더 올바른 표현 같다.
6070인 부모님이 아직도 40대에 접어든 자식 병문안을 오니 뭐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어색하고 미안함 마음을 일단 구석으로 밀어 놓고 자리에 누워봤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 건너편 벽 쪽의 사내 녀석 침대로 누가 방문한 소리가 난다. 대충 들어보니 그의 엄마인가 보다. 엄마들은 말투가 다 비슷한 거 같다. 60대, 50대, 40대 엄마들 모두 비슷한 말투와 소재를 늘어놓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엄마’가 되면 모두 같아지나 보다 하며 의도하지 않게 그들의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 온다.
그 벽 쪽의 사내 녀석은 육군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입고 있는 티셔츠 뒤에 Korea Army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육군 복무자인지 그냥 패션으로 입은 것인지는 상관없다. 뭐 딱히 떠오르는 연관성 있는 단어도 없고. 그렇게 육군은 한 참을 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척아이롤 침대로는 아직 병문안을 누가 오는 걸 보지는 못했다. 하긴 나도 이제 수술 마치고 온 겨우 두 번째 날의 환자이니 아직 못 본 광경이 더 많겠지.


특별히 무엇인가를 했거나, 조금 전 귀가한 엄마 이후로 누가 병문안을 온 것도 아닌데 시간은 어느덧 저녁 식사 카트가 돌아다닐 시간이다.
병원에 있으면 누워있다 앉아 있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환자들을 깨우는 건 식사 나왔다는 외침뿐이다.
재미있는 건 어떤 환자들은 코를 골고 세상모르게 자는 모양을 하다가도 병실 문이 열리며 ‘식사 왔습니다’ 하면, 벌떡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앉는 대단한 정신력을 보이기도 한다.

저녁이 나오기 전인데, 밖에서 약간 소란스러운 2-3명의 인기척이 나더니 병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 두 명과 환자로 보이는 남자가 따라 들어온다.

“일인실로 좀 해주세요.”

“일인실이 지금 여유가 없어요 환자분.”
이런 대화를 몇 번 반복하면서 들어오는 중이고 남자의 목소리는 제법 투박하고 성량이 큰 편이었다. “

“아, 이... 냉장고도 같이 쓰는 거예요?”

“네, 여기 냉장고, 욕실 같이 쓰시면 돼요.”

“일인실로 해주세요, 그런 줄 알고 왔는데.”

“일인실이 지금 더 큰 수술한 환자분들이 계셔서 여유가 없어요. 예약 걸어 드리고 일인실 확인되면 옮겨 드릴게요.”

짜증을 낼 수도 없는 상황은 듣는 사람들이나 설명하는 간호사들이 같은 입장이었고 그 남자는 계속 고집을 부리고 있다.

시끄럽고 나와 상관없는 대화가 저렇게 오고 가는 중이다.

‘아... 시끄럽겠네...’
병원에 입원하고 처음으로, 해가 떠 있는 오후에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빨리 일인실 여유가 생기라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목요일 오후는 그렇게 지나가며 벽시계는 4시를 지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병실 생활. 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