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생활. 2장

수술실 가는 날

by OOSASA
목요일 오전

오전 9시에 예정된 수술이 약간 지체되고 있다. 7시 스케줄이 조금 늦어져서 그렇다며 혈압과 체온을 재고 간 간호사가 설명해줬다.
수술 직후엔 정신도 없고 다음날까지는 움직이는 게 불편할 것 같아 새벽부터 미리 머리를 감고 양치도 마친 상태였다.
‘뭘 하지?’
시간이 조금 남기도하고 더 준비할 게 없나 둘러보다가, 휴대폰 충전기도 집기 편한 곳으로 위치해 놓고 침상 옆의 수납장도 열어서 다시 정리해 본다. 수술 후 불편함 속에서도 손을 뻗쳤을 때 그 어려움을 최소화시켜보려는 잡일이다.

병실에서는 2미터짜리 충전케이블이 유용했다.

“환자분 수술실 이동 도와드리겠습니다.”
드르륵 병실의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간호사가 들어오는 중이고 뒤에는 나를 수술실로 옮겨 줄 또 다른 한 명이 바퀴 달린 작은 침대를 가져와 서 있었다.
‘들어가는구나’
링거 바늘이 손에 꽂힌 상태로 밖의 침대로 이동해서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잘 마치고 오라고 손짓하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천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귀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고 그저 바퀴 굴러가는 진동만 머리로 느껴지고 있다.

처음 병원에 입원을 했던 기억은, 남아 있는 잔상으로는, 8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경련으로 집에서 정신을 잃어 급히 응급실로 옮겨졌었는데 눈을 뜨니 병실이었다. 요즈음 부모님 말을 들어보면 아기 때도, 누구나 최소 한두 번쯤은 겪어보듯이, 38도 이상 고열로 응급실을 찾은 적은 있었지만 내 기억의 ‘입원’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무서워할 건 없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으면 누구든 나한테 숙제를 내주는 사람도 없었고 엄마의 등짝 스매싱도 없었다.
특히 좋아했던 건 환자 식단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식판에 밥을 먹어보는 첫 경험이라 그랬을 것이다.

유난히 싫었던 건 척수 검사를 한다며 등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옆으로 엎드리는 것이었다. 척추 사이에 그 큰 바늘을 찔러 넣고 바이러스나 세균이 감염되지 않았은지 확인을 하기 위해 척수액을 뽑아내는 검사방법이다. 그런데 그 ‘뭔가’를 나한테 채취해가는 그 고통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척추와 신경이 기억하고 있다. 누구도 그 시큰하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과 공포를 참아낼 사람은 없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흘러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는 도중에, 내 자녀들도 같은 검사를 받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때 검사실 밖에서 아이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땐 죄책감뿐이었다. 내가 받았던 고통과 아이들이 똑같이 받았을 공포의 그 날들은 머릿속에서 아직도 떠나가질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수술실에 도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독용 알코올, 아마 포비돈-아이오딘 Povidone-iodine, PVP-I 같은 그 특유한 냄새와 싸늘해지는 복도의 기운이 내가 누워 있는 이동 침대로 옮아왔기 때문이다.
‘삑-‘
“환자 도착입니다.”
고개를 돌려서 보자 수술실 앞의 불투명한 자동문이 열리며 직전까지의 공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장소가 드러난다.
이미 ‘전날 밤 12시부터 금식’이라는 조치로 물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있던 내 몸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가벼운 깃털같이 느껴진다. 침대 위의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기억할 여유도 주지 않는 듯하다. 모든 기억과 감정들이 마음속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는, 눈이 달린 한 덩이 깨끗한 고기 덩어리라는 생각뿐이다. 이상하리만큼 가볍고 정화된 느낌이다.

환자의 시선에서 보이는 수술실의 첫인상은 침대를 바라보고 있는 무영등 Surgical Lights 이 먼저 보이는 넓고 싸늘한 장소이다. 예닐곱 개 정도의 원형의 등들이 둥그런 형상으로 박혀있는 저 무영등은 나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수술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불빛이 켜져 있지 않지만 내가 마취로 잠들면 수술대 위의 나를 쏘아볼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저 등이 ‘팟’ 하며 켜지는 걸 볼 수 있지, 일반 수술 환자들이 저 등의 점멸을 직접 보는 건 흔하지 않다.

이윽고 수술실 간호사가 내 성명, 몸에 금속이 있는지 여부와 금식 상태 등 차트상의 환자와 동일인인지 확인하는 것 같다. 뻔한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니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내 몸에 뭘 두르고 정맥주사 위치와 상태 IV Intravenous를 확인하고 검지 손가락에 빨래집게 같은 것을 물렸다. 맥박이나 혈압을 수술 중 확인하는 용도 같다.
수술을 위해 마스크도 벗었다. 병원이라는 장소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에 대한 평소의 걱정보다, 당장 지금은 수술대 위에 올라 누워있다는 것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순간이다.

큰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 수술실 경험은 몇 년 전, 고작 정계정맥류 Varicocele라고 불리는 간단한 비뇨기과 수술이 유일했다. 그때도 수면 마취를 했지만 여느 큰 병이나 당장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 앞에서는 말할 처지도 못된다.

마취를 시작한다며 한 간호사가 링거의 약액 주입부에 주사를 놓는다. 연결관으로 하얀색 액체가 내 손등으로 밀려 들어가는 게 또렷이 보인다. 아마 많이 들어봤던 프로포폴 Propofol 일 것이다.
‘버텨 봐야지’
오기가 생긴다. 잠들지 않아 보거나 아니면 스르륵 눈이 감기는 그 느낌을 경험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그 하얀 액체는 이미 내 정맥 혈관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 아직 수술실 장비가 눈앞에 그대로 보인다.
‘오오, 아직 잠 안 들었어’
‘대장내시경을 수면으로 검사받을 때는 금세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아직......,’

회복하고 다음날 촬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병실 생활.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