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생활. 1장

첫날 밤, 수술 전 입원일

by OOSASA


수요일 오후.

2층의 외래와 3층의 병실동은 여느 때 보다도 분주했다. 간호사들은 외래, 병동, 수술실 가릴 것 없이 저마다의 분업에 집중하는 듯 보였고 의사들 역시 수술과 진료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소화하는 모양이다.


‘장사 잘 되네’

평범한 직업군에 속하는 나는 이 생각이 먼저 난다. 20대의 푸르름을 한참 뒤로하고 이제 40대의 나이에 접어드니 모두 돈으로 비친다. 푸르다는 것이 파란색인지 초록색인지 답을 내지도 못한 채 늙어가는 느낌이라 아쉬운 감정도 함께 떠 올랐다. 속물이 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함을 어서 해결하고 하루라도 빨리 느긋한 여유와 재미있는 취미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이 나이 즈음이면 누구나 피어오르기에 드는 생각일 것이다.


들릴 장소가 많아 보인다.

수술 하루 전에 입원을 하고 다음날 오전 중에 수술이라고 했다. 금식을 하고 입원 수속을 모두 마친 뒤, 배정된 311호로 짐을 풀었다. 4인실. 눈으로 보면 대강 실평수 15평 정도의 방마다 4개의 환자 침상이 있고 모두 커튼으로 각각 분리되어 있다. 하도 많이 창업 관련 업무도 하고 퇴사 후 요식업을 해 보겠다며 매장을 둘러본 경험이 있어서 공간의 평수 정도는 눈대중으로도 계산된다. 저 커튼이 이곳에서 나만의 영역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경계 이리라.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 참을 기다리니 근무 간호사가 찾아와 앞으로 스케줄과 이런저런 전달사항을 알려주었다. 예전에 10대나 20대 시절에 한두 번씩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피 끓는 청춘인지라 간호사가 예쁜지에도 관심이 갔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나에게 친절한 사람일수록 아름답게 보일 나이인가 보다.


‘설명 잘해주네’


세상 편한 순간. 아무것도 모를 때.

지급된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주변을 정리했다. 침대 옆의 수납장에 당장 불필요한 옷, 개인 물품을 채우기 시작하다 보니 노트북은 괜히 가져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내일부터는 팔을 못쓸 텐데 카페에 오는 것으로 착각했다. 내일 방문하는 부모님 편으로 집으로 다시 보내야겠다고 했다.

“환자분, 2층에서 지금 수술 전 검사 있습니다.”

2층 외래 원무과를 지나 복도를 따라 쭉 걸어가는데 내과에서 이름을 먼저 호명해주어 길을 쉽게 찾았다.

검사라는 것은 대부분 체온과 혈압을 재는 것으로 항상 시작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편하게 있었는데 갑자기 임상병리사가 종이컵과 용량의 눈금이 그어있는 플라스틱 튜브를 건넨다.

“먼저 소변 받아 오시면 돼요. 컵은 버리시고 튜브만 가져오세요.”

난감하다. 수술 후 불편함을 예상하여 먼저 샤워도 말끔히 하고, 하다못해 화장실 볼일도 완벽히 해결하고 왔는데 소변이라니. 금식하라고 해서 4시간 전부터 금식에 방광과 요도, 그리고 대장의 모든 유기물들을 짜내고 왔건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침을 계속 삼키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미련하긴.

저렇게 생긴 것도 있고 더 길쭉한 것도 있다

남자 화장실은 여자 화장실과는 다르게 소변기라는 것이 있다. 평소 이것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식당이나 어디 쇼핑몰에 가도 좌변기에 휴지를 깔고 앉아서 해결한다. 이 소변기라는 것은 서서 쏴의 표본인데, 각 소변기 사로마다 눈높이에 한 줄 쓰여있다.

‘한 걸음 더 가까이’


몇 방울씩 땅에 흘리면 그것이 모이고 모여 보기에도 좋지 않고 청소 담당자에게도 곤욕이겠지만 문제는 소변을 해결하는 나부터도 인상이 쓰인다. 오줌발의 강약을 떠나, 그 벽처럼 생긴 흰색 세라믹 소변기 벽은 반작용의 법칙으로 내 소변을 튕겨내고 그 소변 방울들은 고스란히 중요한 부위에 뿐만 아니라 손과 신발, 그리고 옷에 튄다. 더욱 경멸스러운 점은 그 튕겨 나온 오줌 방울들에는 내 것뿐만 아니라 남의 것들도 수 없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손을 비누로 깨끗이 닦아도 팔뚝이나 옷에 미세하게 이미 다 스며든다.


내가 여자라면 공중화장실 다녀온 남자 친구 품에 안겨 영화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단연코.

예쁘게 칠하고 나온 메이크업에 덧발라지게 될 것이다. 미스트처럼.


습관대로 소변기를 냉정하게 무시하고 받아온 종이컵과 검사 튜브(바틀 Bottle)를 들고 좌변기 칸에 들어갔다. 휴지 걸이 위에 소변검사 시 편리함을 배려했는지 컵 받침대가 앙중맞게 설치돼 있다.

바지를 내리고 종이컵에 먼저 소변을 받아본다.

‘제발 나와라’

‘슈 우우 츄...’

나온다. 집에서 오는 길에 그새 수분이 방광에 채워졌다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앞부분 소변을 버리고 중간 소변부터 받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소변 검사 시마다 하는 버릇이다.

바지는 일단 그대로 무릎에 걸쳐놓고 종이컵에 방금 담긴 그렇게 노랗지도 않은 투명한 액체를 검사 튜브에 담았다. 마게를 돌려 잠그고 큰 미션을 치른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검체를 제출했다.


“오른쪽 팔 올려주세요”

혈액검사. 어려서는 오히려 은근히 기다려지고 이상하게 재미있던 이것이 나이 들고 어른이 되면서 싫어졌다. 스테인리스 같은 차갑고 뾰족하고 딱딱한 바늘이 살을 파고들어 정맥을 뚫고 들어간다는 게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아니면 병원놀이의 기억 한편의 시절에서 현실의 병원을 찾는 나이가 됐기 때문인가.

검사를 모두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2층 외래는 슬슬 마감할 조짐을 보인다. 외래층은 한산해지고 이제 입원층이 바빠질 시간이다.


비주얼은 별로지만 영양사가 검증한 식단

미리 세수를 마치고 로션을 바르고 있는데 밖에서 향긋하고 고소한 하얀 그 탄수화물의 내음이 솔솔 안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식사 왔습니다”

배식 담당자분이 병실마다 직접 식판을 나르고 있다. 입원 수속할 때, 첫날 저녁부터 식사 신청을 하겠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그렇다고 했더니 내 저녁도 함께 나왔다.


정말 시장이 반찬이다. 배고픔은 최고의 식욕을 유발한다. 금식을 하고 먹는 첫끼 이기에 남김없이 다 먹었다. 식판에 나오는 병원밥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1식 4찬. 밥과 국에 세 가지 반찬이다. 1997년에 국방부도 1식 3찬에서 1식 4찬으로 장병들의 식단을 개선하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2021년 현재에도 국민 식단이다. 배고프면 서럽다는데 아파도 밥은 챙겨 먹어야 한다. 환자식을 먹으면서 문득 아프지 않지만 배고픈 사람들은 결국 아프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는 3층 입원동이 더 활기찼다. 퇴근 후 잠깐 들리는 병문안 보호자들 혹은 지인들, 하루 종일 누워있다 달이 뜨니 날개를 펴는 올빼미족 환자들 그리고 나이트 근무를 위해 슬슬 출퇴근 교대 준비하는 의료진들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는 중이다.

내 침상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오른쪽의 냉장고 너머에 있다. 은근히 사각지대이고 구석이라 자리는 만족스럽다. 자리를 잘 맡는 것도 복이다. 줄을 못 설 거면 자리라도 잘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번 병원에서의 자리는 일단 잘 잡았다.


먼저 입원했거나 이미 회복 중인 환자들은 각자 볼 일을 보는 듯했다. 옆자리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환자가 들락거리는데 목발을 짚은 거 보니 다리 쪽 수술을 한 모양이다. 이 학생은 키가 꽤나 큰 편이었는데 몸무게도 제법 나가는지 목발을 짚고 나갈 때마다 ‘삐그덕 척, 삐그덕 척’ 하는 소리를 냈다. 하는 행동도 여느 10대와 다르지 않게 주변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때론 살짝 인상도 쓰게 했는데 예를 들면 너무 오랫동안 친구와 10대 언어를 쓰며 통화를 할 때, 커튼을 ‘촥’하고 필요 이상으로 열고 닫을 때 등이다.

나는 이 사내 녀석을 당분간 ‘척 아이 롤’이라고 부르겠다. ‘척’ 소리 내면서 ‘아이컨택’을 강하게 하길래 그리 지었다.


이걸 시작한 순간 시작된 불편함




밤 9시.

“환자분 성함 어떻게 되시죠? 링거 맞을 부분 먼저 준비해 드릴게요.”

밤이 되자 내일 수술 동안의 마취나 회복 후에 내내 맞고 있을 링거 위치를 잡으러 담당 간호사가 왔다. 아까 반나절 안내해 준 담당과 다른 걸 보니 오늘 나이트인가 보다.

링거 위치를 잡는다는 것은 쉽게 말해 팔에 미리 바늘을 꽂아 두는 거다. 그리고 기본 수액을 그곳에 놓고 가는데 혈관이 막히지 않게 미리 사전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마취제나 항생제 혹은 기타 수액들이 원활하게 혈관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혈액 검사 후 두 번째 바늘이 팔의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따끔~ 움직이지 마세요.”

목소리가 천사 같아서 정맥 속으로 파고드는 주삿바늘의 섬뜩함을 참을 수 있었다.


실제로는 더 어두웠다. 기본 어플로 편집

밤이 더욱 깊어지자 담당들이 돌아다니며 병실마다 불을 껐다.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인기척도 내지 않았고 각자의 공간은 모두 어둠으로 바뀌었다. 병실들의 불빛은 모두 꺼지고 몇몇 보이던 스마트폰의 빛들도 반딧불이처럼 사라졌다. 오늘이 수술 전 첫날 밤인 나는 병실 바로 앞의 휴게 공간에 나와 앉았다.

정말 고요했다. 토성을 지나친 보이저호에 혼자 앉아 있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의 적막함보다 그다음, 앞으로의 막막함이 더 공포일 것이다. 병원도 병원 밖도 마찬가지이다.


병원 천장은 모두 저 디자인이다

내일 수술을 위해 나도 억지로 눈을 붙여야 했다. 이렇게 정신없던 반나절이 지나가고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을 땐 병원 특유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팔에 꽂힌 링거가 침대에서 상당히 거슬리고 신경 쓰였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바로 옆자리 척아이롤의 스마트폰도 꺼지고 공간은 우주가 됐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입원 첫날은 빠르게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