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돈이 세상을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만, 돈은 분명히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이런 돈의 흐름을 막는 것은 가장 저렴하게 제품을 생산한 곳에서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는 꼴이다. p.167
밀의 공리주의와 플라톤의 이상주의, 즉 밀이 플라톤 철학의 미덕을 받아들여 공리주의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상기하자. 밀은 인류가 노동이나 부 자체보다는 위엄, 고결함, 정의에 더 관심을 기울일 날이 오기를 고대했다. p.235
마르크스는 역사가 노예제 사회에서 봉건제,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역사적 경로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나 어떤 불변적인 법칙에 사이에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놓여있다. p.252
마르크스에 따르면, 생산 과정의 기술이 바뀌면 기존의 생산 과정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새로운 생산기술이나 방법은 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의 양과 질을 바꾼다. (...) 즉, 미래의 생산력은 새로운 생산 과정에 달려 있다. 그러나 정치, 윤리, 그리고 법 제도 전반은 낡은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즉, 생산력이 발전한다고 해서 이런 제도들이 발맞춰 신속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 여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상부구조는 정적(static)이다. 구지배 계급이 낡은 관념을 틀어쥐고 새로운 경제발전을 저해함으로써 역동적인 역사 과정을 방해할 때 투쟁이 일어난다. p.255
첫 번째 한입을 먹었을 때 그녀는 1달러어치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두 번째 한입은 0.9달러어치의 즐거움을 준다. 세 번째 한입은 0.7달러어치 즐거움을 준다. 네 번째 한입은 0.64달러어치의 즐거움을 주고 이렇게 한입씩 먹을수록 즐거움은 줄어든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입의 요구르트를 그녀는 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먹는다고 해서 즐겁지는 않기 때문이다. (...) 경제학자들이 이렇게 줄어드는 한계효용을 따라 아래로 떨어지는 하향 수요 곡선을 그렸다. 매번 영희는 요구르트의 한계효용(이익)과 한계비용(가격)을 비교한다. p.326
경제학이 다루는 분야는 가격, 이윤, 지대, 비용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법, 도덕, 유행, 철학 등도 모두 경제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 분야는 경제학을 뒷받침할 수도 있고, 또는 그것의 정체성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과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경제학의 정의 또는 범위를 확장했고, 동료들이 더 넓은 사회 현상에 눈을 뜨도록 촉구했다. 경제학은 앨프리드 마셜이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학문이 아니다. p.398
이렇게 케인스주의자들의 자문을 받은 정치가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뿌리치고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고 경기 순환과 싸우기 시작했다. 경기가 둔화되면, 그들은 연방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 삭감을 통해 경기를 진작시켰다. 물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일시적인 재정 적자는 피할 수 없다. 반대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하면, 그들은 세금을 올리거나 연방 지출 삭감을 통해 경기 과열 현상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정부 예산은 균형을 이루거나 흑자로 돌아서게 된다. p.431
오늘날 케인스주의자들과 통화주의자들의 승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승부다. 이하에서 우리는 미국의 연방 정부가 국민 경제를 네 개의 페달을 가진, 즉 가속 페달 2개와 브레이크 2개를 가진 자동차로 간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p.444
밀턴 프리드먼과 폴 새뮤얼슨을 잇는 신세대 경제학자들은 케인스주의와 통화주의를 분명하게 구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리드먼의 통화 정책과 케인스의 재정 정책이 모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p.479
현재 우리의 아이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의 보살핌과 안내를 받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부모들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세계가 너무 거대해져 더 이상 그것을 한눈에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확실성을 보장하는 방법이 아닌 불확실성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스스로 배워야 한다. p.598~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