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달성하고 실업률은 완전고용에 근접한 4%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GDP 성장률은 꾸준히 올라 3%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유럽연합의 경제성장률은 1%대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실업률은 6.5%로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청년실업률은 14.6%로 여전히 높습니다. 미국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반면에 유럽연합은 이제야 끝없는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차이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좌) 미국의 주요 경제지표, (우) 유럽연합 경제성장률
<붕괴>의 저자 애덤 투즈는 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유럽연합의 문제였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를 말합니다. 2008년에 촉발된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일어났지만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음을 지적합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미국은 정부와 연준(Fed)의 발 빠른 재정 및 통화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줬습니다. 이에 시장은 금융 위기 속에서도 미국 정부를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불협화음을 일으켰고, 유럽 중앙은행의 위기에 미온적인 자세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방향을 못 잡는 유럽연합의 태도는 10년 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발생했는데 왜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아래 그림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2002년 미국과 유럽 간 은행 거래는 총 15,670억 달러에서 5년 동안 42,550억 달러로 활발해졌습니다. 당시 3배 가까이 증가한 은행 거래는 미국의 월스트리트가 아닌 유럽의 런던 시티가 금융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미국과 유럽 은행 간 긴밀한 연결 고리는 부실 채권으로 촉발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에 금융 충격을 줍니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 사항이 생깁니다. 금융 위기의 원인이 된 1) 부실 채권은 왜 발행되었으며, 2) 왜 유럽연합은 금융 위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을까요? 1) 인간의 탐욕이었으며, 2) 위기에 대처할 유럽연합의 제도 부재와 정치적 한계였습니다.
인간의 탐욕
사람의 탐욕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2000년 대 민간업체들은 대출상품을 증권화하면 수익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MBS(Mortgate Backed Securities, 주택저당증권)가 만들어진 배경입니다. 담보가 불안정한 MBS라도 구조화된 상품 안에서 다른 상품과 결합하면 신용평가사에서 최고로 신뢰한다는 AAA 등급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CDS(신용부도 스와프), CDO(부채 담보부 증권)을 통해 위험을 희석시켰다. 듣기만 해도 복잡한 방식인 금융 공학은 많은 부실 담보들이 최고 담보물로 변신했습니다. 이 담보물의 이름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프라임 아래 있다는 이름의 '서브 프라임' 대출입니다. 2007년은 담보물을 세탁하는 방식이 최고조에 달해, 최고 담보물인 프라임 대출 규모를 서브 프라임 대출이 뛰어넘게 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겁니다.
부실담보를 AAA로 둔갑시켜 싼 이자에 돈을 빌려와 부실담보 채무자에게 비싼 돈으로 빌려주는 차액으로 증권가는 많은 이익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취약한 담보물에 문제가 발생된다면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많은 금융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익에 취한 금융인들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죠. 어떤 금융인은 이런 말까지 하였습니다. "음악이 흘러나오면 거기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한다. 음악이 꺼진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익을 극대화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는 금융위기를 더욱 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책임지지 못하고 투자사인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했으며 금융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음악은 꺼졌고, 파티를 뒷수습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유럽연합의 제도 부재와 정치적 한계
유럽 연합은 94년에 설립되었으며 유럽연합의 경제공동체인 유로존은 99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유로존에 가입한 나라가 유로화를 공통적으로 사용했습니다. 금리와 환율도 통일시켰죠.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은 독일과 같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여 싼 가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남유럽에 자금이 몰려들어오자 자산(부동산) 가격은 끝없이 상승합니다. 자산 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판단하면 나라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여 브레이크를 걸어서 자산에 거품이 끼는 걸 미연에 방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유로존의 중앙은행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었습니다. 남유럽에 자산 가치가 상승할 시기에 유럽 중앙은행은 오히려 금리를 인하하는 행동을 보입니다. 폭주하는 기관차에 연료를 주입한 꼴이 된 것이죠. 결국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하고 자산 가격은 폭락합니다. 자산 가격이 폭락한 남유럽은 자국의 화폐가치를 절하하여 여행이나 수출로 경상수지를 흑자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로화로 고정되어 있는 환율은 여전히 화폐가치가 절상되어 있었고 남유럽의 재정위기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됩니다.
어찌 보면 유럽연합과 유럽 중앙은행에서 남유럽의 재정 위기처럼 위기가 발생할 때 미국 정부와 연준이 했던 것처럼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시장을 안정시키려는 임기응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유럽 내에는 그러한 제도가 부재했습니다. 고통을 분담하지 않으려는 독일과 지원을 해야 한다는 프랑스, 영국의 정치적인 한계가 결과적으로 10년 동안 유럽연합의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상황을 부정하기는 유럽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미국에는 연방정부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 안에서 임기응변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유럽연합의 불운은 위기가 닥쳤을 때 단지 그러한 제도만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보다 견고한 제도적 틀을 만들려는 유럽연합의 노력이 기본적인 정치적 한계에 부딪쳤을 때 바로 그때 위기가 찾아왔다는 점이었다. p.174
지금의 호황은 미국 정부와 연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정적자를 감수한 정책과 막대한 돈을 찍어낸 양적완화 정책은 완벽한 정책이었을까요? <붕괴> 중·후반부에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를 다룹니다. 미국과 유럽이 어려움을 겪을 때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 금융권의 탐욕으로 위기를 겪고 긴축정책으로 힘들어하는 보통 사람들의 분노가 미국과 유럽의 정치를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금융위기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발생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전쟁 사태. 브렉시트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모습까지. 금융위기로 촉발된 지정학적, 정치적 변화를 다음 서평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