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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Nov 29. 2022

퇴사하겠다고? 앞으로 뭐할 건데?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너 그래서 뭐할 건데, 나가면?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밖은 지옥이야, 지옥!"

"계획은... 비밀입니다."


지옥을 여행하는 단테, 곧 나에게 펼쳐질 미래(?)이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으로서 회사에 입사를 늘 염원하던 때가 있었다. TV를 틀면 역대급 취업난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방송에서 울려댔다. 선배들은 흠뻑 쥐어터진 복싱 선수들처럼 취업 한파 때문에 나가떨어졌고, 동기들은 졸업 시즌이 다가오니 하나둘씩 소식이 사라졌다. 덩달아 내 마음도 애가 타기 시작했다. 인생의 과정 중에 있어서, 한 삼분의 일 지점쯤 되려는 취업. 나는 그것의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었다. 그래야만 그 이후에 내 미래가 성공적으로 펼쳐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늘 생각했다. '설마 내 자리 하나 없겠어?'

 그때는 유독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기업들의 본사 직원들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사원증을 달고, 착 달라붙는 와이셔츠를 입으며 선한 미소로 아메리카노를 들고 가는 그들의 모습. 나는 그들의 모습이 미래의 나와 유사할 것이라고, 아니 응당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힘든 취업 준비 기간을 버티고 또 버텼다.

 인고의 끝은 역시 달콤했다. 1년가량의 취업 준비 기간을 뚫고, 남들이 내로라하는 최고의 대기업에 입사한 것이었다. 대기업의 복지는 아무래도 입사 선물이 아닐까? 역시 대기업답게 와인도 굵직한 걸로, 꽃다발도 큼지막한 걸로 와서 나는 부리나케 SNS에 자랑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SNS를 하지도 않던 내가, 빛의 속도로 회원 가입을 마치고 주변 지인들까지 샅샅이 찾아내 팔로우 신청을 했다. 기쁨은 나누면 그것이 곱절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주 자신만만해지기 시작한 나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세상이 내 아래로 보였고, 그동안 나를 무시하던 녀석들, 이번에 혼쭐을 내주겠다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나 누군데~ 이번에 S그룹 합격했어"

"어머, 축하해! 너무 잘됐다! 거기 예전부터 가고 싶어 했잖아?"


 고리타분한 인적성 시험들을 뚫고 면접까지 직진하였으며, 면접에서도 특유의 입담으로 면접관들을 사로잡아 최고의 점수를 받으며 입사한 나. 그때까지는 너무 행복했다. 아, 이것이 꿈이 아니구나. 내 인생도 이제 이렇게 꽃피는구나. 이제 여자 친구만 사귀면 되겠구나! 그렇게 나는 낭만적인 회사생활을 머릿속으로 수백 번은 그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신입사원 연수를 떠났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랩을 하는 친구에서부터, 공모전을 휩쓸고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친구, 노래로 아름다운 음역대를 보여주는 친구들까지 여태껏 볼 수 없었던 전국 각지의 무림고수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INFP지만, 이상하게도 모르는 사람이랑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나는 다행히도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평소에 댄스 동아리에서, 조금씩은 춤을 배웠었던지라 운이 좋게 신입사원 연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장기자랑 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과 동거 동락하며 2주를 보냈고, 비록 실수한 부분은 있었지만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나는 본격적으로 회사에 입성했다.


본격적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하려 했으나...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무한한 충성을 바칠 것만 같았던 내 열정은 회사를 다닌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갑갑한 회사 사무실, 퇴근 시간만 바라보며 모니터 우측 하단의 시계만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퇴사하는 나의 모습들. 팀의 일원으로서 적응을 하지 못했던 나는, 회사에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 곳이 맞을까?' '이것보다 더 나은 일이 있지 않을까?'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수많은 고민들이 떠올랐고, 결국 나는 얼마 못가 팀장님께 마음에 담긴 비수를 꺼냈다. 그것의 정체는 과연 옹졸한 판단이었을지, 아니면 위대한 도약의 서막을 알리는 예고 일지는 먼 훗날이 지나 봐야 알 것만 같았다.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


 생각보다 퇴사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아, 나의 퇴사는 마무리되었고 나는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꾸려 나가야 할지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기 전에 팀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걱정이 된다고, 내가 걱정이 된다는 그 말씀이었다. 너 한 몸은 잘 먹고 잘 살아야 된다고 말이다. 그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대기업에 합격한 정도의 스펙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굶어 죽지는 않지 않을까? 밥은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나 자신을 믿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왕 될 대로 될 거, 엎질러지는 대로 한번 나가보자.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기 시작했다.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떻게 펼쳐질지, 과연 나란 사람은 어떤 무궁무진한 잠재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지가 말이다. 조그만 내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펼친 나는, 귀여운 초등학생들처럼 내 꿈을 본격적으로 적었다.


소설가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꿈,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문학을 접하면서 피어올랐던 나의 예술혼을 불태워보기로 말이다. 그래, 본격적으로 한번 시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중에서도 서울시라는 지역에 거주하는 어느 소설가 지망생의 제 인생 2막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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