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높은 곳에서 출발해 결국은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가여운 비의 운명. 정처 없이 세상 속으로 곤두박질쳐, 자신이 어딘가로 흘러 들어갈 운명임을 비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빗물은 계속해서 순환하겠지. 한때는 강물이 되어, 또 한때는 바닷물이 되어 그렇게 세상을 떠돌아다니겠지. 애처로운 비의 운명. 역마살이 낀 비의 운명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슬픔.
지난날에 가득했던 후회와 자책들이 떠올랐다. 땅바닥에 떨어지는 비를 보니, 내가 그토록 바라고, 열렬히 희망하던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던 때가 떠올랐다. 세상이 그리 험난할 줄도 모르고, 부딪치고 또 부딪쳤었다. 오늘도 세상 어딘가로 또 빨려 들어갈 ‘나’란 인간과 가여운 비. 비와 나의 앙상블은 오늘따라 슬프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