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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Oct 25. 2023

바다가 되어 나를 포용한다면

요새 오은영 박사가 TV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한다. 정신과 의사인 오은영 박사는 자신의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내담자들을 상담해주고, 통찰력 있는 조언을 그들에게 해준다. 근래 들어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했던 나로서는 오은영 박사가 진행해주는 상담처럼 누군가의 관점에서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내 마음속에 당최 가라앉질 않는 감정들을 차근차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제3자의 관점에서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마음 청년 사업을 신청했고, 운이 좋게 수락이 돼서 무료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심리 상담을 하러 가는 첫날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조금 걱정이 되는 마음과 함께 상담사분은 어떠신 분일까 궁금해하며 집 밖을 나섰다. 센터에 처음으로 들어갔을 때 느껴진 건 고요함과 아늑함,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정화시켜 줄 수 있는 잔잔한 클래식풍의 음악 소리였다. 대기 의자에 몇 분 동안 앉아서 기다리니, 웃는 목소리로 환하게 나를 맞이해주시는 상담사님을 볼 수 있었다. 무척 프로페셔널하고 인자하신 상담사님 덕분에, 나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다.   

   

 심리상담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진행한다. 내 마음속에 있었던 무의식적인 상처들이, 아직은 회복되지 못한 채로, 상처가 덧난 채로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고통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상담의 요지였다. 상담사님께서는 이런 점을 말씀해주시고, 곧이어 노련한 솜씨로 내가 그동안 겪었던 과거의 일들을 모조리 이야기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렸을 때의 나,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 가족 구성원의 일대기, 그리고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까지 남김없이 털어 상담사님께 털어놓았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늘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는 생각이 너무 많다고, 너는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소리도 여러번 들었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갈대처럼 이리저리 마음이 흔들렸던 것은 모두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나의 마음속 기둥들이 약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가리고 싶은, 나 혼자 짊어져야 할 커다란 돌멩이들이 마음이란 호수 속에 깊게 묻혀 있었다. 상담사님께 이야기들을 털어 놓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지나쳐 왔던 많은 시련과 상처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여러 기억들과 마주한 것이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가 경험해야 했던 상처랄까? 제우스를 분노케 한 죄로, 산정상으로 끊임없이 돌을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나에게도 무의식에 새겨진 마음의 상처가 나를 금이 가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 나갔다.     


 사람은 자신의 모든 모습들을 사랑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명암이 존재한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약점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그걸 인정하면 나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 같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나의 어두운 면을 늘 가리기 급급했다. 심리상담이 진행 되가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모든 면을 포용 할 수 있을 때,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햇빛이 비치는 나의 밝은 부분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어둡고 빛이 비치지 않는 나의 어두운 면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필 때, 즉, 자신의 부족한 점마저 온전히 사랑하게 될 때 남들과의 관계에서도 비로소 완전해질 수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사실 심리상담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내심 조금의 수치심을 느꼈다. 계속해서 이 이야기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전전긍긍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계속해서 나의 어두운 면들을 숨기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 상담사님께 그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항들을 말함으로써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안의 좋지 못한 점들을 품으려는 나를 바라보니,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모든 면을 품으면, 다른 사람도 분명 품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10회라는 심리상담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센터로 나온 순간, 상담사님께서는 나를 처음 맞이하셨을 때와 같이 환한 미소로 나를 배웅해주셨다. 한없이 든든하고, 묵직해보였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내면 속에 지어진 내 마음이 튼튼하고,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도 누군가를 품어 줄 수 있는 기둥같은 존재가 될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문득 바다가 떠올랐다. 지구의 탄생과 더불어 오랫동안 지구의 생명에 허파 역할을 한 바다가 말이다. 바다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잉태하고, 자연이 조성되며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듯, 우리 각자의 마음에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한다. 우리 개개인의 모습들은 그런 바다 위에 솟아오른 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면들을 품을 수 있는 인자한 바다가 되어, 서로 다른 개인이라는 육지들을 연결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상담을 마친 지금의 감정 그대로를 가지고, 내 모든 면을 사랑할 것이라고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모든 이들을 꼭 감싸 안아 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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