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겸 黃金町(코가네마치)이야기
을지문덕을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을 겁니다. 수 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살수에서 수 양제의 야망을 좌절시킨 지략이 뛰어난 장군으로 알려져 있죠. 승리하는 과정 속에서 을지문덕은 패하는 척 연기하면서 적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을 썼고 또한 현존하는 우리 역사 최고(最古)의 오언고시인 여우중문이란 시를 남겨 지장(智將)으로서의 인상을 강하게 남겼습니다.
고구려와 수, 당의 침략은 삼국통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서막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을지문덕이 승리로 이끈 살수대첩은 현행 중, 고등학교 역사수업시간에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중국의 대군을 통쾌하게 전멸시켰기 때문일까요? 이러한 을지문덕의 전공은 삼국기, 연개소문과 같은 드라마나 위인전, 동화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한국인들 사이에 확대 재생산되어 누구나 을지문덕 하면 살수대첩을 떠 올릴 정도로 상식처럼 되었습니다.
을지문덕은 비단 교과서나 대중매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정구역의 일부로서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개항한 이래 중국인들은 조선으로 건너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숫자는 제법 많아 일제시대에는 경성, 인천, 원산 등지에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었죠. 그중 경성에서 중국인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동네가 黃金町(고가네마치)란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중국인들은 일본인이나 조선인을 상대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그런데 1945년 해방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었으니 일제의 영향력을 지우고 새로운 독립국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당장 서울 한 복판에 일본식 이름이 붙여진 행정구역이 많았습니다. 비록 해방 직후엔 대한민국 정부는 커녕 남조선과도입법의원도 설립되지 않았지만 일제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명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식 행정구역의 명칭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고가네마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고가네마치는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이긴 하지만 당시 한국인들 입장에선 청산해야 할 유산이라고 느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인들의 민족의식은 거세졌고 중국인들이 남의 땅에서 일제와 타협하며 조선인들이나 일본인들 상대로 장사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다라고 느꼈을 수도 있겠죠. 또한 일제가 만보산 사건을 조작하여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알린 것과 같이 한국인들이 중국인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측면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행정구역의 명칭을 바꾸려면 적절한 이름이 있어야 했습니다. 고가네마치의 중국인들의 기세를 누르고 한국인들의 자주의식을 고취시킬 만한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죠. 그때 마침 한국 역사 속에서 한 인물을 찾아냅니다. 바로 을지문덕입니다. 을지문덕은 중국 세력인 수의 대군을 무찌른 경력이 있기 때문에 당시 정부 요인들이 적절한 선택이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1946년 10월 고가네마치는 을지로로 변경되게 됩니다. 이는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경성의 혼마치(본정)를 일본인의 기세를 누른다는 의미에서 임진왜란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의 이름을 따 충무로로 바꾼 것과 마찬가지죠.
을지로라는 행정구역이 만들어졌다는 말은 해방 후 한국인들 사이에 을지문덕이 인지도가 높았다는 소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을지문덕의 이름을 딴 행정구역을 서울 한복판에 제정하진 못했겠죠. 이는 을지문덕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이 한국 역사 속에서 긍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어 내려왔음이 분명합니다.
여하튼 앞에서 살펴본 교과서나 대중매체, 을지로의 예에서 보듯 을지문덕이라는 인물은 현재 한국인의 일상 속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을지문덕이 한국인들 사이에 소비되는 모습을 보고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 올랐습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고려 사람, 조선 사람, 식민지 조선 사람, 대한민국 사람들이 을지문덕을 어떻게 기억하고 활용해왔는지를 살펴보면 한국사를 조금 더 풍성히 살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올렸던 블로그 글을 개요로 삼아 을지문덕이 어떻게 기억되고 활용되어 왔는지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