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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한 Dec 24. 2020

워킹 데드 The Walking Dead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

워킹 데드는 2010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방영 중인 좀비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삶을 그리는 미국의 드라마이다. 처음 이 드라마를 접하였을 때 막연히 긴장감과 스릴이 넘치는 작품에 재미를 느꼈지만, 시즌이 거듭 될수록 인간의 삶에 대한 많은 것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인간의 본성과 생존본능 그리고 각자의 삶에 대한 가치관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산 자를 위한 터전과 죽은 자를 위한 터전이 바뀌어가는 과정이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워킹 데드 시리즈의 시작은 미국의 도시 애틀랜타를 배경으로 한다. 정체 모를 바이러스를 통해 갑작스럽게 등장한 좀비로 인하여 도시는 점점 죽은 자에게 점령당하게 되고, 산 자들은 기존 도시의 터전을 잃고 점점 도시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오늘날 워킹 데드 속 이런 현상과 반대되는 상황은 도심 속에서 죽은 자들의 터전이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죽은 자들로 인하여 도심으로부터 산 자들의 강제적 추방이 이루어졌고, 현시대는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을 도심으로부터 추방시킨다. 이런 상황은 부동산 문제뿐 아니라 장례, 장묘시설을 기피시설로 분류하는 시대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뒷산에 묘지를 두고 살았다. 그러한 환경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만, 현대 도시화로 인하여 묘지는 집 앞 또는 집 근처에 있어서는 안 되는 듯 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졌다. 장례, 장묘 시설은 더 이상 도시의 활력을 줄 수 없게 되었고, 산 자들의 공간과 함께 할 수 없는 죽은 자의 공간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장례 시설과 장묘 시설은 죽은 자를 위한 공간만은 아니다. 항상 장례, 장묘 시설은 그 기능을 한다. 그것은 고인들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그들을 추모하고 추억하고 기억하며, 그 공간을 통해 산 자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엄연히 살아있는 자의 공간에 가깝다. 그렇기에 드라마 속 산 자의 터전에는 고인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묘지가 집 근처에 공존하는 걸 볼 수 있다.


건물 또한 사용자와 기능을 잃는 순간 죽은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건물과 공간 속에서 건물의 생기를 볼 수 없다. 워킹 데드 속 등장하는 도시에는 많은 건물들이 등장한다. 바이러스 전의 그들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이미 죽은 자들이 점령한 공간은 그들과 같이 죽어있다. 그러한 공간은 정말 음침하고 빛이 없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산 자들이 다시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는 공간들… 그것이 드라마의 시즌3부터 등장하는 교도소 일지라도, 생명이 건물에 자리를 잡으면서 교도소는 삶의 터전이 되고 삶의 안락함을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해간다. 


정말 죽은 자만을 위한 공간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죽은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변에서 죽은 자만을 위한 공간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하고자 아니면 종교적 차원에서라도 살아 있는 사람이 고인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 그러므로 그들을 기억하고자 고인을 모시는 공간은 절대 죽은 자를 위한 공간만이 아닌, 현존하는 우리들을 위한 공간일 것이며, 진정한 죽은 공간은 삶이 없는 공간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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