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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Sep 29. 2021

플라톤의 망령

통일장 이론

현대 물리학이 다루는 세계는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 비해서 매우 크고 깊다. 크게는 백억 광년의 시공간과 작게는 물질의 기본단위인 쿼크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단순히 사변적에서  실제적인 것으로 속속들이 파헤쳐져 과학적 지식의 영역이 매우 넓어졌을 뿐만이 아니라 축적된 양 또한 방대하다. 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것은 고전 물리학을 바탕으로 이해되었던 것보다 자연은 훨씬 더 단순하고 통일적인 자연법칙들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는 매개입자에 의해 그들의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힘들에 따라 상호작용하는데 매우 잘 짜인 법칙에 준거한다. 그렇다고 발견된 법칙을 기반으로 수학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한 표준모형이 우리가 궁금해하는 세계를 모두 설명해주는 모형이라고 믿는 학자는 없다. 모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양자 세계와 상대성의 개념을 통합할 단서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추론으로 좀 더 일반화된 새로운 이론적 모형의 개발이 수십 년 동안 시도되었다. 


표준모형이 수많은 엄격한 실험의 검증을 통과하고 있는 동안 실험 결과와 맞지 않아 폐기된 이론적 모형은 매우 많다. 대다수의 비표준모형은 물리적 계수를 가지고 있어 물리량의 예측값이 계수에 의존한다. 이 경우 실험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형 내의 계수 조정을 통해 얼마든지 물리량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폐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백여 개의 계수를 가진 초대칭 모형은 계수 조절이 얼마든지 가능하여 실험 결과와 맞지 않아 폐기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설령 그렇더라도 수많은 다른 비표준 모형은 이들 모형이 올바르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단 한 번의 실험적 결과도 아직 없다. 이것이 지난 50년간의 실험을 통하여 밝혀진 사실이다. 


90년대 중반에 초끈 이론의 M-이론은 종결자라고 할 정도로 우주를 포괄적으로 기술하는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여겨졌다. 이론은 자연의 모든 힘을 아우르는 통일장 이론으로 표준모형을 포함하는 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찬사를 얻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일 수도 있다는 것의 흥분은 1, 2 년 내에 사라져 버렸다. 방정식의 가능한 해의 개수가 10의 500승 개로서 이들 모두가 물리적으로 가능한 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해의 개수가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의 수보다 더 많다. 각각의 해가 특정의 우주를 지칭하므로 가능한 우주의 개수가 이처럼 많다는 뜻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이 중 한 개의 해가 우리 우주의 경우일 수가 있지만 해가 너무 많으므로 어떤 것이 우리 우주의 해인지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불가능의 확률이지만 설령 무슨 수로 꿰어 맞추면 오늘날 인류가 알고 있는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와 힘들에 의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하더라도 10의 500승 개의 하나일 뿐이다. 


해가 각각의 우주를 대변하므로 해의 개수가 곧 우주의 개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각각의 우주가 서로의 정보를 알 길이 없이 거품처럼 수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해는 특정의 우주를 대변하므로 기본 입자의 질량, 전자기력, 중력, 강력 및 약력 등 우주에 존재하는 각각 힘들의 크기 등 물리 계수가 각각의 우주마다 모두 다른 값을 가지고 모든 것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 거품 우주 또는 평행 우주의 개념이다. 현재 인간에 의해 관측의 대상이 되는 우리의 우주는 이중의 하나일 뿐이고 평행우주에서 각각의 우주는 서로 정보를 전달할 수 없으므로 다른 우주에 대해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우주끼리 서로 정보 전달이 불가능하므로 검증이 불가능하다. 검증을 못하므로 어차피 존재의 여부는 의미가 없다. 비록 초끈 이론이 수학적으로 간결하여 아름답고 일관적이고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을지라도 이것이 사태와 일치하느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초끈 이론 신봉자들은 인간 원리에 의하여 초끈 이론 자체에 우주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예측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이론을 정당화시키기도 한다. M-이론은 이론적 모형이 가져야 할 필수 요소인 물리 현상의 예측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차피 물리 현상의 예측이 없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여 해가 맞고 맞지 않고의 선택은 없다. 그러나 과학 이론은 검증 가능한 가설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자연현상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초끈 이론은 이들 둘 모두를 가지고 있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표준모형 이래 모든 모형의 구축에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는 대칭이다. 대칭은 수학적으로 아름다우며 자연이 대칭적일 거라는 생각은 인간의 오성을 더 자극한다. 매우 뛰어난 다수의 이론물리학자는 이론적 모형 구축의 기반으로 실험 결과보다는 대칭적 아름다움을 우선시하는 경향성이 분명히 있으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비슷하게 표준모형은 단지 수학만으로 유도되지 않을뿐더러 철학적인 논증으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추론에 미학적인 기준으로 방향을 틀어 많은 예측들이 성공하면서 실험에 의해 검증된 자연을 잘 설명하는 이론적 모형의 전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연은 더 큰 대칭적 구조를 가진다는 미학적 관점이 더 과학적일 수도 있다. 더 큰 대칭성으로 표준모형을 포함하는 구조의 새로운 모형의 구축의 노력은 자연스러운 노력인 것이다.  



표준모형(SM)이 완성된 이래(그림 왼쪽 하단부), 연도별로 구축된 이론적 모형과 대칭성의 관계 그래프. y축의 대칭성은 위로 갈수록 대칭의 정도가 더 크다.


새로운 모형의 개발의 핵심은 더 큰 대칭을 준거로 한 것이다. 1967년에 전기약작용 이론을 시작으로 연도별로 구축된 이론적 모형이 가진 대칭성의 정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프의 x축은 모형이 구축된 연도를 가리키고 y축은 대칭성으로 위로 갈수록 대칭의 정도가 더 크다. 약간의 이탈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대칭성에 의한 모형이 구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을 전후로 하여 시작된 이론 모형의 구축은 대칭성에 따라 2000년 정도까지 30여 년 동안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2000년 이후부터 이론적 모형의 구축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초끈 이론을 끝으로 지난 20년 간 모형 구축은 없었다. 이는 대칭을 바탕으로 이성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고려할 수 있는 가능한 이론적 모형이 다 도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들 모형이 맞으리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론적 추론은 주어진 조건하에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모형이 맞고 안 맞고는 실험의 결과를 보는 방법 외에는 없다. 비록 이론적 준거가 있고 수학적으로 정합한 모형일지라도 자연의 작동과는 전혀 무관하여 폐기된 이론적 추론들이 매우 많음을 볼 때 아직 검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모형일지라도 이들이 자연을 올바로 묘사한다는 보장이 없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오직 표준모형 만이 검증을 통과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올곧은 이성적 사유를 통한 자연의 이해의 시도와 오늘날의 비표준모형으로 자연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묘하게 닮아있지 않을까? 표준모형에서 보듯이 대칭성이 어느 정도 자연의 핵심적 요소일 수는 있으나 궁극적 이론을 위해 자연에 더 완벽한 대칭을 요구하는 것은 입자물리학의 지난 50년간의 여러 정황을 놓고 볼 때 실제 세계를 더 알고자 하는 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태양을 도는 행성의 궤도가 원형일 필요가 없듯이 자연이 꼭 대칭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자연이 대칭적일 것이라는 믿음은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는 미학적 판단의 기준으로 연원은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은 세계 질서의 기본 원리를 동일성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원운동은 동일성이 유지되므로 그에게 원은 완벽한 체계였다. 원의 완전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상의 체계에 그대로 적용되어 별들의 궤도는 원이어야 한다는 진리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는 순전히 미학적 기준으로 논란의 대상이 아니었다. 물론 당시의 인지 능력으로 별들의 궤도가 원이 아닌 다른 형태의 기학적 형상일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는 하다. 이유야 어떻든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주전원의 개념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채택된 주전원도 원의 완벽성을 믿은 때문으로 운행 데이터를 그 믿음 하에서 맞추려는 과정의 소산물이었다. 원에 대한 관념은 16세기의 케플러도 의심 없이 받아들여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진실을 밝히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지동설에 타원 궤도가 접목되어 주전원이 쓸데없게 되어 역행운동 등이 간단하게 설명되었다. 


이처럼 원에 대한 믿음이 우주의 올바른 이해를 지연시킨 것처럼 오늘날 자연에 대한 대칭성에 대한 믿음이 오히려 플라톤의 망령 같은 것이 아닐까? 자연은 본래 대칭이 아닌 것이 많다. 사람도 왼손(오른손) 잡이가 따로 있듯이 자연과 자연에 존재하는 사물이 약간의 비대칭적인 것은 사실이다. 약력은 반전성이 보존되지 않고 중성미자는 왼손잡이만 존재한다. 쿼크가 가지는 특성 중에 왼손잡이 입자는 움직이는 방향과 스핀의 방향이 같은 카이랄 성 Chirality이 있다. 생물학의 아미노산 등 분자들도 대칭보다는 비대칭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계에 대한 설명의 수학적 모형 뒤에는 대칭성이라는 아름다움이 있어도 실제로 우주가 형성되는 근간에는 비대칭성이 오히려 중요한 잣대가 된다. 대칭이 깨짐으로 기본입자가 질량을 갖게 되며 물질과 반물질의 균형도 깨진다.

      

얘기가 쉽지 않다. 파토스를 넘어 인간 깊숙이 숨은 로고스를 끌어내어 인간의 정체성을 더욱더 확실시해주는 고귀한 일이다. 우리 인간은 완벽한 통일장 이론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어 우주를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우리 우주를 잘 이해하는 이론적 모형인 표준모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인류 로고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개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연구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2400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 것처럼, 인류는 이 거룩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미래에도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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