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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Nov 19. 2021

지식과 인간 수명

  지식 knowledge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또는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이다. 그러므로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이든 아니면 뭔가 실용적으로 터득한 방법이든 그 어떠한 것도 만약 인식을 통해 이해가 수반되는 모든 것은 지식에 해당한다. 지식과 인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알아내어야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식은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쌓이게 되었다. 기록물을 보면 인류가 쌓은 지식은 거의 일정하게 점진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결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그 이전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어 인류에 의한 지식의 증가율은 시대와 관계없이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지식의 증가율은 갑자기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 인류가 그런 변화를 겪은 지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증가율이 너무 높아서 지난 100여 년 동안 인류가 쌓은 지식이 이전의 수천, 수만 년 동안 인류가 쌓은 지식의 크기보다 훨씬 더 클 정도이다.


  수천 아니 수만 년 동안 지식의 증가율이 정체되어 있다가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커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모로 보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오늘날의 지식 증가의 현주소는 분명히 그것을 일으킨 주체가 있을 것이다. 물론 지식의 폭발적 증가에 동력을 제공한 실마리는 어느 하나가 아니고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증가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동력의 주체는 분명히 있다.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지식의 증가가 일어난 시점을 전후로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실마리가 20세기에 지식의 증가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20세기 중반부터는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러한 특징적인 추세가 계속 지속될 것인가도 의문이다. 이러한 것을 알고자 하면 지식 팽창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데 지식의 증가와 인간의 평균수명 증가는 시기적으로 같아 같은 시기의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지식과 수명 증가율이 시기적으로 같은 관계는 지식 팽창을 초래한 주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간의 평균수명 변화를 먼저 살펴보자.


  인간의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어선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인류사의 모든 시기를 통하여 인간 수명은 20세에서 30세 정도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기원전 10세기부터 20세기 전까지의 수천 년 동안 인간 수명은 그렇게 추정된다. 이렇게 정체 상태에 있던 인간 수명은 19세기 말부터 증가의 조짐을 보인다. 20세기 들어서는 눈에 띄게 증가하여 중반부터는 70세를 넘어서게 되어 수명에서 지수적 팽창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그래프로 표시하면 BC10세기부터 1900년까지 거의 변화가 없다가 1900년을 전후하여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오늘에 이른다. 변화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질병에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질병에 의한 사망률은 항상 시대와 관계없이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기아 등에 의한 사망도 있지만 이들 요소는 부정기적이고 무작위적인 특징이 있으므로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 않아 인간 수명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었다. 그것과 비교해 질병은 올바로 고치는 방법이 알려지기만 한다면 치료될 수 있는 것이므로 질병에 의한 사망률은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인간이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고 제어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100년 조금 넘었다는 뜻이 된다. 실지로 그렇다. 인류사의 대부분 시대는 항상 각종 질병에 시달렸고 시시때때로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됐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치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수천, 수만 년 동안 병의 치료를 위한 의학적 지식은 치료하는 데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다. 17세기에 Vesalius, 하비 Harvey 등에 의해 인체의 구조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수반되어 처음으로 고대 의학인 갈레노스 Galenos 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지속해서 개발된 새로운 질병 이론과 치료법은 거의 모두 쓸모가 없었다.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병의 치료에 주술이나 점성술에 의존하는 행태는 19세기에도 여전히 성행하여 치료의 방법에서는 고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1900년 직전부터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BC10세기부터 2000년까지의 인간의 평균수명. 수명은 수 천 년 동안 변화가 없다가 1900년을 전후하여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오늘에 이른다.


  1900년대를 전후하여 인간의 수명이 가시적으로 늘어나게 된 데에는 이전과는 다른 괄목할 만한 의학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유럽의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고 학문 분야에도 커다란 진보적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의학에서는 비로소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의 올바른 방법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백신이 만들어지고 병의 사전 예방을 위해 위생 관리 등이 이루어져 질병을 제어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방법이 알려진 이래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질병 치료가 대중화될 만큼 제어 방법은 일반화되어 평균수명이 인류 사상 처음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평균수명은 집단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으므로 경제적 상황이 좋으면 의료 지식이 먼저 전해지고 의료의 수혜도 좋으므로 이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수명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혜택이 극도로 제한된 경제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의 평균수명은 옛날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경제력이 가장 강했던 유럽에서 1870년대부터 평균수명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유럽 다음으로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가 곧이어 뒤따르고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뒤떨어진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유럽보다 수십 년이 지나서야 수명 증가의 조짐이 나타난다. 아시아는 1920년대부터 수명의 증가가 시작되어 유럽보다 반세기 늦고 경제적으로 더 낙후된 아프리카는 1930년대부터 시작되어 아시아보다도 10년 정도 더 늦다. 오늘날 서방 선진국에서의 평균수명은 80세 수준이고 그에 반해 아직 저개발 된 나라가 많은 아프리카 지역의 평균수명은 50세를 웃돌고 있다. 이처럼 경제력에 따른 대륙별, 나라별로 큰 차이는 있으나 현재 지구 상 전 지역의 인간 수명을 평균하면 약 70세 정도이다.


  인간 수명의 증가가 시작되던 시기의 유럽은 기존의 학문은 그 깊이를 더하고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지던 시기여서 분야의 다양화가 융성하던 시기였다. 인간 수명의 연장의 묘약은 병의 올바른 해석과 처방을 발견한 의학의 발전 덕분인데 이러한 발전은 의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다른 모든 분야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다. 창의적인 새로운 발상들은 여태껏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봇물 터지듯 내놓았고 이들은 학문의 분화를 일으켰고 이로부터 또 새로운 지식이 창출되는 식이었다. 이와 같은 동시다발적인 진보는 지식의 급팽창을 초래했다. 그런데 지식의 증가 형태와 인간 수명의 증가는 매우 닮았다. 평균수명이 오랫동안 변화가 없는 것에 비해 지식은 속성상 인류에 의해 오랜 옛날부터 축적되어 증가해 왔을 것이므로 변화가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둘은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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