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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Sep 13. 2022

통일 이론

세상 통합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인과 관계를 찾아내어 그 이유를 파악하려고 한다. 일이 일어난 원인이 여럿일 수 있지만 이들을 추적하다 보면 의외로 이들 원인이 일어나게 된 하나의 근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여러 원인을 설명하는 하나의 근본 원인은 문제를 깨끗하게 풀어줄 것이다. 이처럼 사회생활을 통한 문제 해결에 인과 관계를 많이 사용한다. 과학자가 어떤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정말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을 알아내면 학자는 매우 흡족해할 것이고 무언가를 확실히 발견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어떤 물리학자가 우주 운행의 근본 법칙을 알아내었다면 우리는 세계의 모든 것을 알아내었다고도 주장할 수가 있다. 세상이 운행되는 근본 법칙을 알아내었다면 우리가 세상의 모든 일들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근본 법칙이란 정의상 그런 것이다.     


20세기 들어 물리학자들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단위를 알아내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기본단위는 우주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근본이다. 물질의 근본 단위에도 단순함이 적용된다. 존재하는 기본 단위는 불과 몇 개 안 된다. 현대 물리학은 우주의 물질 구성단위를 알아내고 이들이 우주를 운행하는 힘들에 의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한다. 오늘날 물리학은 자연이 통일 법칙의 지배를 받는 매우 추상적인 수학적 구조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이나 과학이 하고자 하는 목표는 설명하고자 하는 현상이 크든 작든 어떤 통일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자연을 논하든 인간사회를 논하든 논리적으로 통일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쉽지 않다. 통일적 법칙이 발견되려면 그 현상에 대하여 이해가 우선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해가 전제된 상황이라고 해서 통일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한 단계는 철학이든 물리학이든 비슷하겠지만 물리학에서 한 가지 예를 들여다보자. 19세기에 이루어진 전기와 자기 현상에 대한 이해는 정지와 운동의 순차적 이해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이다. 18세기 중반에 전기를 모으는 장치인 라이덴병이 발명되고 병 안에 축적된 전기를 이용하여 전기에 대한 여러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양과 음의 두 종류의 전기는 많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전기는 서로 밀치고 다른 전기는 서로 끌어당기고 전기의 양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모두 다르다. 전하 사이에 미치는 힘 또한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18세기말에 쿨롱이 발견한 법칙은 두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두 전하의 양에 비례하고 그것들 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닮았다. 그런데 쿨롱의 법칙은 두 개의 전하가 정지해 있는 상태에서 전하 사이에 미치는 힘의 법칙이다. 라이덴병은 정지해 있는 전기를 모아 놓은 도구였으므로 병에서 방출되는 전하는 일정 시간 동안 도선 등에 전기를 흐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방전되곤 했다. 전기를 지속해서 흐르게 할 수 없었던 라이덴병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정전기의 성질만을 알 수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쿨롱의 법칙은 정전기 연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념 법칙이 되었다. 사람들은 전기를 지속해서 공급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즉, 정전기의 이해로 말미암아 다음 단계로서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의 현상 탐구가 중요했다.


1800년에 전기를 지속해서 흐르게 하는 전지가 발명되었다. 전지의 발명은 전기 현상의 이해에 기폭제가 되었다. 전지는 흐르는 전기인 전류에 관한 연구를 촉발하였고 전류는 단위 시간당 전하의 흐름으로 규정되었다. 전하의 운동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았다. 전류가 흐르면 반드시 자기장이 유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전기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없다. 전하가 시간에 따라 변하면 자기가 유도된다. 전류가 자기를 유도하는 법칙이 앙페르의 법칙이다. 앙페르의 법칙이 알려진 지 20년 후인 1831년에 이와는 반대 현상이 발견되었다. 즉,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기장이 전류를 유도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패러데이 법칙의 발견은 전기와 자기가 독립적이 아니라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함의하고 있었다. 이처럼 전기와 자기의 변화에 대한 일련의 이해는 정지 상태의 전기 및 자기 현상의 이해를 전제로 한다. 정지가 이해되지 않거나 정지가 먼저 화두가 되지 않고 변화가 선행하는 일은 없다.     


전기로부터 자기를 생성하고 역으로 자기로부터 전기가 생성되므로 전기장과 자기장을 통일시키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맥스웰에 의해 완성된 전자기 방정식은 두 개의 정적 방정식과 뚜 다른 두 개의 동적 방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기와 정자기, 전류와 자기장, 자기장으로부터 전기가 유도되는 방정식들이다. 맥스웰방정식은 물리학에서 힘을 통일하여 이룬 최초의 통일장 이론이다. 미래에 다른 힘을 통일하리라는 희망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정지와 운동의 선행 관계는 철학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정지, 운동 및 통일은 뚜렷이 나타난다. 자연 현상이든 인간사회이든 세상은 항상 변한다. 지구상의 어떤 것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떨어지는 물체나 애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이나 나무로 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 변화(또는 운동)는 정적 상태(정지)를 전제로 한다.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지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밀레투스학파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따졌다. 만물이 물, 공기 또는 아페이온으로 되었건 그들의 질문은 정적이다. 만물 구성의 근본 물질에 관한 의문은 자연을 통일적으로 보려는 첫걸음이다. 전기나 열 현상 등 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적인 상태에서의 이해가 먼저 수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지 상태에서의 상황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이 균질한 특정 상태의 정지를 먼저 아는 것은 현상 이해로 나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만물의 구성 물질은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고 이들은 변화한다.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처럼 세상 모든 것 또한 변한다. 설령 만물이 그 무엇으로 되어있어도 그 질문 자체로는 자연이나 인간에 대한 올바른 답을 구할 수는 없다. 그것들의 변화한다는 사실에 준거하여 변화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철학이건 과학이건 무엇을 이해하기 위하여 항상 정적 상태의 담론을 먼저 사유하거나 탐구했다. 정지가 이해되었으면 이를 바탕으로 변화의 이해로 들어간다. 정지를 바탕으로 변화가 이해되고서야 통일을 구축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 모두를 통일적으로 학문화한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학문을 만든 최초의 지성이자 동시에 모든 학문을 통일적으로 기술하려 한 최초의 대학자이다. 그의 놀라운 연구 결과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지난 200여 년 동안 밀레투스학파로부터 플라톤까지의 놀라운 성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오늘날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의 연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근대적 의미의 통일장 이론 시원은 뉴턴부터라 할지라도 아리스토텔레스를 빼고는 인류 과학 문명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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