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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Jan 10. 2021

인간 탐구의 시작

소피스트들

초기 그리스 사상가들은 만물의 궁극적 원리를 찾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자연에 관한 이론이 다양하게 구축되었을지라도 그 어떤 이론이라도 확실성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정지가 이해되고 이를 바탕으로 운동의 사유가 나타나는 등 발전의 관점에서는 긍정적이었으나, 지식의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는 회의적이었다. 각각의 이론들이 서로를 배척하며 전진해 왔어도 이론들의 오류를 제거하고 조화를 이루어낸 그럴듯한 최종 결과물은 없었다. 존재는 있되 변화는 환상이라는 말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 사상가의 사유를 믿게 되었을지라도 사물의 본질은 우리의 세상과 동떨어져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파르메니데스의 진리는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알 수 있고 감각을 통해서 얻은 정보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주장은 자연 이론에 대한 의문을 가중했다. 200여 년에 걸친 자연 탐구의 결과를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연히 자연 연구가 일반인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극히 제한되었다. 


자연 이론이라면 반드시 요구되는 안정성과 불가변성 대신에 안정적이고 가변을 허용하는 이론 영역을 찾으려는 노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자연 이론에 대한 반발은 사유의 중심이 자연에서 인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을 의미했다. 더 나아가 당시 그리스 사회는 자연 연구에만 매달릴 만큼 안락하지도 고립적이지도 않았다. 확장된 식민지로 팽창하는 그리스는 나라 간 교역이 활발하고 다른 민족을 접하는 일이 많게 되어 인간 삶과 행위의 문제가 더욱더 표면화되는 시기였다. 그리스 식민지 사회에서의 이질적 법률과 관습의 빈번한 조우가 이루어졌다. 상이한 관습과 규범 체계를 가진 사회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소피스트는 이러한 배경을 등에 업고 등장하였다. 소피스트들은 기술을 가르쳐 삶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시민들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교육자였다. 그들의 관심은 인간 사회였다. 그들이 추구하는 지식은 세계에 관한 보편적 원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 관한 것이므로 객관적 진리를 찾는 일보다 실제적인 것들을 찾았다. 그들을 어떤 특정의 철학의 학파라고는 할 수 없어도 절대적인 지식은 없다는 회의주의적 입장은 모두 공통으로 받아들였다. 진리를 추구하고자 한 결과가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결론으로 치닫는다면 진리는 어차피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자연 탐구가 보여준 한계를 접한 그들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를 가장 잘 대변하는 어귀는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인간 개개인이 보이는 대로 진리가 있고 이들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진리는 순전히 상대적이다. 어떤 생각이 다른 생각보다 더 나을 수는 있어도 더 참되다고는 할 수 없다. 상대성은 감각에 의한 지각이나 판단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심지어 전통적 제도나 믿어져 내려오는 것들과 안정된 생활방식을 의문시하여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일으켰다. 왜냐하면 상대주의적 입장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만족스러운 지적 해결이란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회의주의적 입장은 사회를 유지하는 법에 따른 제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법은 신화 속의 신들에 의해 영감을 받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조차 흔들리게 되었다. 소피스트들은 법률과 도덕률의 신성을 무너뜨리고 이러한 것들은 단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회의주의적 입장으로 법이 신성에 의해서 건 필요에 의해서 건 상관없이 절대적인 가치나 기준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인간 행위는 오로지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자신이 편해지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어떤 소피스트는 정의는 강한 자에게만 이로울 뿐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면 올바른 것, 지혜, 정의 또는 훌륭함 등은 명목상일 뿐 어차피 보편적으로 이들을 규정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소피스트들은 그들이 사는 인간 사회에서 무언가 논증되어야 할 많은 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교육자로서 교육을 통하여 사회가 개선되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진보적 역사관을 가졌다. 소피스트가 주장한 인간 행위에 대한 회의주의적 관점은 사회 과학의 중심요소인 정치사상을 최초로 개진하게도 했다. 프로타고라스는 법이 신으로부터 이거나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면 법은 사람들 간의 합의의 결과일 것을 암시했다. 그러므로 사회는 사람들 간의 계약에 따라 구성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소피스트들에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법을 사회 구성원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일종의 약정이라고 했다. 그들은 평등의 규정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였다. 평등권이 그리스인 중에 자유인 남자에게만 왜 주어져야 하는지 정당성에 대해 따졌다. 


이들의 인간 사회에 관한 연구는 언어 이론, 인식론, 윤리학과 정치철학 분야를 망라한다. 다만 교육 목적이었으므로 학문적으로 정제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담론이 학파를 구성할 만한 철학적 지향점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쏟아놓은 상대적 관점에서의 여러 토론 대상은 비록 성숙하지 못한 것일지라도 후기 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언어 이론은 주어와 술어의 관계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고 후일 논리학이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상대방과의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반론술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논박술로 변천하게 하였다. 반론술은 어떤 주장에 대해 대립하는 주장을 내세워 반박하는 기술인 데 비하여, 논박술은 어떤 주장에 대한 불합리한 결과를 끌어내 반박하는 기술론이다. 인식론은 비록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불 붙여졌으나 소피스트의 회의주의적 태도로 인해 인식의 감각과 이성과의 연관을 더욱더 깊이 들여다보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식이 어차피 상대적이라는 그들의 교설이었다. 이는 인간 사회가 영위되는데 커다란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된 지식을 논할 필요가 생겼고 그것으로부터 윤리적 판단의 기초가 확립될 필요가 있었다. 정치에 대한 태도, 법에 대한 여러 다양한 생각들도 여하 간에 논리적으로 정초 되어야 할 구실 거리를 소피스트들은 제공하였다.  

    

참된 지식과 올바른 윤리적 판단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게 다 인간 과학이 학문으로서 발판을 다지게 하는 계기로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단계였다. 그 선봉에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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