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초 사상가들은 모두 자연을 설명하는 하나의 궁극적 원리가 있다고 믿었다. 자연을 구성하는 사물들이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은 이러한 변화의 다양성의 이면에 단일성의 궁극적 원리가 있다고 사유했다. 그런데 탈레스의 물,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헤라클레이토스의 불과 같은 그들이 언급한 단일성을 보장하는 어떠한 근거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단일성에 대한 믿음으로 직관적 사고를 하였고 그들의 원리를 보장해주는 자료는 당연히 없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단일성의 믿음으로 아무 말 잔치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들은 단순한 가설을 뛰어넘어 형이상학적 이론을 구축하여 인류 사유의 중요한 변곡점의 역할을 하였다.
이론의 핵심은 만물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분명히 경험적 관찰을 넘어서 자료가 충분치 않았던 시대에 뛰어난 이성적 논증을 필요하게 했다. 세계가 하나의 법칙에 의존하여 자연 전체가 체계화되는 고난도의 사유 개념은 철학의 시조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특히 단일성의 개념은 자연의 근본을 하나로 해석 가능하다는 믿음에서 우러나온다. 단일성은 다원성에 비교하여 자연의 단순성과 체계성을 더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근본 법칙이 될 수 있다. 자연의 근본을 찾는 연구는 원리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체계의 구축이 목적이다. 자연의 근본이 단일성으로부터 파악되는 믿음은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에게도 로망이다. 자연의 근본을 완전히 설명하는 물리학의 통일 이론이 구축된다면 다른 과학도 이해되지 않을까? 이처럼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상위의 것이 이해된다는 사상이 환원주의(reductionism)이다. 환원주의는 밀레토스 학자들의 작품이다.
이들은 자연 근원의 단일성을 거대 담론으로 끌어들였으나, 실제 경험하는 세상은 다면성과 다양성의 총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에 대한 설명이 없이 단일 법칙은 무의미하므로 다수를 하나와 조화시키는 이론적 구축이 매우 중요했다. 다수에 가장 중요한 주제는 변화 또는 운동이었다. 근본이 하나로 시작한 정적 개념은 다수의 변화인 동적 개념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그러므로 자연을 이해하려면 정지와 운동을 같이 이해해야 한다.
다수의 대립적 관계를 하나의 통일로 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은 다수와 하나의 연결 고리를 만든 변화에 관한 최초의 방법 이론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감각을 통해 알고 있는 자연의 현상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최초의 이론가였다. 그런데 단지 다수와 하나를 조화롭게 해석하는 것으로 문제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는다. 감각으로 얻어진 자연에 대한 앎이 참된 것인지를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참이 아니면 조화로운 해석은 무의미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자연에서 변화가 없으면 하나만 존재한다. 변화는 환상일 뿐이고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는 그의 논증은 감각 너머 이성적 사유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사건이었다. 이로써 자연에 대한 궁금증은 정적 관점에서 변화의 관점으로 옮겨갔고 감각을 통한 관찰이 중요한지, 아니면 이성의 논증이 더 중요한지가 화두가 되었다.
밀레토스 학자를 포함하여 모두는 자연을 이루는 궁극적인 원료가 물질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물, 무한자, 공기, 불, 원자들 모두가 물질이다. 최초의 사상가들은 모두가 유물론자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았다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일원론을 주장하는 학자마다 물, 공기, 불, 흙으로 쪼개진 상황에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할 것도 같고 근원은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 제시된 각각 한 개의 원소들의 장점만을 모아 만물이 4 원소의 사랑과 투쟁의 힘으로 생성되는 다원론은 감각을 중하게 여기는 이론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아낙사고라스의 씨앗 이론과 원자론도 유물론적 입장이지만 원소가, 눈에 보이지 않아 감각보다는 이성에 의존하고 있는 다원론이다.
오늘날 물리학의 탐구 대상은 물질이다. 그런 관점에서 밀레토스 학자 등 초기 그리스 사상가들은 최초의 물리학자들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어떤 특정 법칙을 통해 지구는 둥글고 허공에 떠 있으며 대기 현상은 자연적 원인으로 발생하고 과거에 동물은 오로지 물에만 있었다는 주장을 일관성있게 주장하는 것이 과학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철학자라기보다는 최초의 물리학자 또는 우주론자로 평가될 자격이 있다. 특히 원자론자들의 이론은 다른 어떠한 고대 이론보다 현대 물리학의 이론과 유사점이 많다. 그들이 언급한 대로 자연을 구성하는 더는 쪼갤 수 없는 궁극적인 단위가 있으며 자연의 모든 물질은 이들 몇 개 안 되는 기본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현대 물리학의 개념과 구체적으로 유사성을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고전적인 원자론자들은 원자와 분자의 현대 개념에 대한 경험적 기초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에 이른 약 200년에 걸쳐 그리스에서 일어난 우주론 논쟁은 정지에서 운동의 이해로 이어져 통일 가능성의 바탕을 세운 시기였다. 더 나아가 존재론, 원자론 등으로 이어져 앞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이 탐구되고 새로운 것들은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전진하였다. 물론 하나와 다수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럴지라도 이들의 자연 탐구는 후대에 통일 이론의 길이 세워지게 한 전초였다. 또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밀레토스학자들의 이러한 과학적 사고가 없었다면 후대의 사람들이 자연을 탐구하여 과학을 발전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비록 오늘날의 관점에서 많은 부분이 올바르지 않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가르쳤다는 사실이다. 과학적 사고를 이어받은 서양이 과학의 선봉에 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동양을 보면 알 수 있다. 동양은 자연을 바라보는데 신화적 요소와 초월적 요소를 벗어난 적이 없어 그리스에서와 같은 과학적 사유로부터 도출되는 사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지구가 둥글다고 인식한 것은 16세기 말이 되어서야 일어난 일이다. 그 이전에 과학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제 그리스의 사유는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자연에 집중한 사유는 인간에 대한 논의로 들어간다. 이 시기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