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
모든 삼단논법이 올바르지 않지만 올바른 추론으로서 논법은 필연적으로 결론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올바른 추론을 인식론적, 학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논증이다. 그러므로 삼단논법과 함께 논증 또한 추론이지만 모든 추론이 논증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삼단논법을 다룬 <분석론 전서>에 이어 <분석론 후서>에서 추론의 확장인 논증에 관해서 다룬다.
논증은 일종의 학문적 방법 이론이다. 우선 공리, 정의 또는 가설을 으뜸 원리로 하여 논증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공리란 증명이 필요 없는 것들로서 배중률, 모순율 등이 이에 속한다. 배중률은 모순 관계에 있는 두 생각이 모두 틀릴 수는 없다는 것이고 모순율은 어느 것에 대하여 같은 관점에서 동시에, 그것을 긍정하면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의는 이러이러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지는 것으로 명사의 의미이고 가설이란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다거나 없다고 말해지는 것들로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가정이다. 예를 들어 기하학에서 우리는 점과 선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분석론 후서는 ‘모든 지적 가르침과 배움은 이미 존재하는 앎에서 온다’로 시작한다. 이미 존재하는 앎이란 이미 알려진 특정의 지식이므로 증명이 필요 없는 것들이다. 논증은 증명이 필요 없는 원리에 기반을 두고 학문적 지식의 성취를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지식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하나는 그것 때문에 사실이 있고 그것이 그 사실의 이유를 아는 경우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이 있는 바 대로의 존재 외에 그것을 의미하는 다른 것은 없으므로 참이라는 것을 알 때이다. 두 가지의 조건이 충족되면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 완전히 이해한 것이다. 이처럼 학문적 지식의 성취는 그것의 존재 이유와 까닭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성취는 논증을 통해서 인식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증을 결론이 참으로 도출되는 연역으로, 결론에 대한 이유를 알게 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 때문에 원인이 논증의 핵심 요소가 되므로 왜(why)가 가장 중요한 앎의 대상이다. 모든 변화하는 대상이 4 원인설에 따라 설명된다는 논리는 이런 연유에 기인한다. 더 나아가 모든 변화를 통합한 형태로 설명하는 것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에 통합한 형태는 유기체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분석론 후서의 논증을 통해서 4 원인설에 준거한 통합 이론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논증이 성립할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가 내세운 논증 성립의 전제 조건은 다음과 같다. 논증적 학문 지식은 ‘참’이어야 하고 일차적(근본적)이어야 하며, 직접적이고 결론보다 더 잘 알려진 것으로 결론에 선행하며 결론의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전제가 반드시 참이면 일차적이고 직접적으로 증명 불가하다. 만약 증명이 필요하면 으뜸 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명제를 결론에 대한 으뜸 원리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전제들은 원리 또는 원리로부터 증명된 명제이다. 이것이 바로 연역 추론이다.
그렇다면 으뜸 원리를 어떻게 획득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귀납을 원리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절차로 고려한다. 배움은 귀납과 연역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귀납 없이 보편성을 고려할 수 없다. 귀납은 보편적인 것의 원리를 취하는 방법이고, 연역 추론은 보편적인 것들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귀납은 개별적 관찰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들을 설명하는 보편적 원리를 만들어내므로, 보편원리로부터 출발하는 연역의 원리는 귀납으로 획득된다. 귀납과 연역의 연결고리에 대한 매우 중요한 주장이다. 귀납을 강조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은 기억에서 생겨나므로 지식의 파악에 경험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지각과 관련된 귀납의 중요성은 그의 저작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그런데 과연 원리를 획득하는데 이처럼 개별적 사실들을 통해 보편원리를 파악하고 보편원리를 연역의 체계 아래 원리로 세우는 일이 일상적일까? 물론 결코 아니다. 귀납으로 포괄적 법칙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제시하여도 보편 법칙을 찾아낼 수 있는 개체는 극소수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를 간파한 것 같다. 그는 누스 Nous를 도입하여 이를 으뜸 원리를 파악해 내는 능력으로, 누스를 인간 최고의 능력으로 여럿을 통해 하나를 보는 능력이라 칭했다. 개별적 관찰들로부터 보편원리를 끄집어내는 사유 작용인 누스는 ‘직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담이지만 20세기 과학철학에서의 과학 방법론의 주제 중 많은 부분이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에서 언급되었다는 점이다. 다루지 않은 듯한 다른 부분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을 알기란 매우 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