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의 결정체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은 그의 저작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큰 영향력 발휘하고 있다.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을 넘는 더 이상의 논리학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라고 단언할 정도이다. 그의 오르가논 중에서 <분석론 전서>에서 다루어지는 삼단논법은 논리학의 정수이며 가장 진중하게 취급되어왔다. 쉴로기스모스 Syllogismos라 명명된 삼단논법은 영어에서 syllogism으로 표현되는 등, 라틴어권 모두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범주와 명제 편에서 단어와 문장에 관한 구조가 거론된 것에 이어 문장들의 결합에 의해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논증의 첫 단계가 삼단논법이다.
삼단논법은 어떤 것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다른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논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한 삼단논법의 종류를 모두를 기술하고 모두가 타당한 논리를 가지지 않음을 논증한다.
가장 보편적인 삼단논법의 예를 가지고 시작해 보자. 다음의 두 전제와 결론을 가정하자.
모든 한국인은 김치를 좋아한다.
홍길동은 한국인이다.
홍길동은 김치를 좋아한다.
두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되는 문장 각각은 문장 각각은 명제라 불린다. 명제는 항상 무언가가 다른 무언가의 술어가 된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삼단논법은 세 개의 명사(여기서 명사는 문법에서의 명사가 아니라 ’ 지칭하는 것’을 의미하여 동사나 문장이어도 상관이 없다)와 세 개의 명제로 구성된다. 세 개의 명사는 한국인, 김치를 좋아한다, 홍길동이다. 첫 번째 전제는 ‘모든’으로 시작하고 긍정이므로 ‘전칭 긍정’ 명제이다. 그 외 다른 것으로 전칭과 대비되는 특정의 것을 지칭하는 ’ 특칭‘이 있을 수 있고 긍정 외에 ’ 부정‘이 있다. 그러므로 명제는 전칭 긍정, 전칭 부정, 특칭 긍정 및 특칭 부정의 네 종류가 있다. 이처럼 모든 명제는 네 종류로 나뉘며 명제는 각각의 명사가 순서가 바뀌어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삼단논법은 많은 종류의 유형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법에 등장하는 세 개의 명사를 결론의 술어로 등장하는 명사를 대명사(김치를 좋아한다), 결론에서 대명사를 술어로 삼는 명사를 소명사(홍길동), 두 전제에 같이 등장하는 명사를 중명사(한국인)로 구분하였다. 이때 중명사가 사용되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이다. 중명사가 주어와 술어로 각각 사용된 경우, 두 번 모두 주어로 사용된 경우와 모두 술어로 사용된 경우이다. 예제는 중명사가 주어와 술어로 각각 쓰인 경우이다. 중명사 쓰임의 유형을 각각 격이라 칭하여 1 격, 2 격 및 3 격이 있다. 격에 따라 다른 가능한 삼단논법은 네 개의 다른 명제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격에 따른 논법의 가짓수는 4x4x4=64로서 모두 64종이 있으므로 가능한 전체 삼단논법의 수는 모두 192종이다.
그런데 가능한 경우의 수의 삼단논법이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삼단논법 가운데 타당한 결론을 주는 일반적인 규칙을 발견하였다. 전제 중에 최소한 하나는 전칭 명제와 긍정 명제가 들어 있어야 한다. 또 다른 특징으로 전제 중의 하나가 부정 명제이면 결론도 부정 명제가 된다. 그래서 1 격만이 완전하다고 여겼다. 1 격 형태 중에 대전제는 반드시 전칭 명제이고 소전제는 긍정 명제여야 타당한 결론이 나옴을 알아내었다. 이러한 규칙을 적용하면 1 격에서는 모두 4개의 식만 타당함을 알 수 있다. 또한 2 격과 3 격 삼단논법은 적절한 치환으로 1 격과 같음을 보일 수 있어 정의된 명제의 형태에서 어느 것이 타당하고 부적절한지 논증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얻어진 타당한 논법의 수는 14종이다. 이 말은 참인가 거짓인가의 판단에 유용한 14가지의 논리 형식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삼단논법은 더는 논할 것이 없다고 여겨질 만큼 완벽해 보였고 후대 저명 철학자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은 전칭 또는 특칭 등 양에 의존한 추론만을 다루고 있고 '만약... 그렇다면' 형식의 추론은 없다. 더 나아가 술어에 해당하는 명사를 '모든' 또는 '약간의'를 사용하여 한정시키는 추론을 다루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모든 한국인은 어떤 김치를 좋아한다'처럼 김치 앞에 한정하는 추론 형태는 다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형태의 삼단논법은 20세기 들어서야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나온 지 2천3백 년 후의 일이다.
삼단논법의 예제를 보면 매우 단순함을 알 수 있다. 결론을 얻는 것이 그저 상식의 인식 선에서 일 뿐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사실 삼단논법의 어떤 예를 가져다 놓아도 비슷한 느낌으로 인식 상 또는 논리상 커다란 발전이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불필요한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절대적으로 이러한 분류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보았다시피 참과 거짓을 명확하게 따질 수 있는 삼단논법은 192종 중에 14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제로부터 결론을 얻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결론을 증명하기 위하여 전제의 참과 거짓을 알아내는 논법을 연구하였다. 즉, 그가 관찰한 어떤 현상에 대한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떤 전제가 필요한지를 묻기 위해서였다. 그의 삼단논법은 동물 연구에 획기적으로 많이 쓰였다.
삼단논법이 논증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이유는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반드시 참이 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역의 경우가 이러한데, 앞의 예시처럼 첫째와 둘째의 전제가 참이면 홍길동은 김치를 좋아한다는 결론을 반드시 얻게 된다. 이처럼 참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결론의 내용보다 범위가 더 큰 두 개의 참인 내용의 전제를 적용하는 것이 연역이다. 연역의 특징은 어떠한 방식으로 엮어도 두 전제가 참이면 결론은 항상 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예시처럼 짧은 문장에 국한되지 않고 어떠한 긴 서술도 두 개의 전제가 참이면 결론은 반드시 참이 된다. 그러므로 연역 체계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논증을 통해서 참인 결론을 끌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철학에서 연역을 많이 적용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런데 참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하여 전제가 반드시 진리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제가 참이 아니라면 결론은 무조건 틀리게 되어있다. 연역의 방법을 원리적으로 과학에 적용할 수 있다. 다만 이때 전제로 이용되는 자연현상이 반드시 참이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