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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Feb 19. 2021

범주와 명제

단어와 문장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감성이 직관에 의해 판단한 어떤 표상을 오성이 잡아들여 선험적으로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범주라는 형식을 빌어 표상을 이해한다고 하였다. 칸트가 사용한 범주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범주가 그 기원이다. 범주는 사물의 존재를 가리키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사물을 분류하는 근본 개념이다. 방식은 다양하여 총 10가지가 있다. 존재하는 방식은 실체를 가지고 말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양이나 사물의 성질로서도 얘기할 수 있다. 사물이 있는 장소나 시간, 위치로서도 존재를 알 수 있기도 하고 다른 사물과의 관계나 사물의 상태와 능동 및 수동적 반응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는 과학자이다’는 나란 존재를 과학자란 실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74킬로그램 나간다'로 양으로, ’ 나는 논리적이 아닌 것을 싫어한다'로 질로서도 나에 대한 존재 표현이 가능하다. 또는 어디에 있다거나, 몇 시에 무엇을 했다거나 등으로도 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능동 및 수동적 행위에 의해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다. ‘나는 공정을 해치는 사람들이 처벌받기를 원한다’와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다’ 등은 능동 및 수동적 행위를 통해 나란 존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주는 개체를 주어로 삼는 문장에서 술어로 쓰일 수 있는 모두 10가지의 서로 다른 성격의 일련의 표현 방식이라는 뜻이다. 즉,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명사와 동사 또는 형용사를 동원하여 범주를 나타낸다. 


그런데 범주는 언어적 표현 방법의 분류일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논하는데도 쓰인다. 언어로 의미되는 바는 대상 자체를 분류한 것이므로 술어의 개념 외에 모든 것을 분류하는 10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범주는 개념 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어떤 테두리 안에 한데 묶어 놓는 기본 개념이다. 이들은 서로 환원되지 않으며 자신들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범주는 형이상학에서 논하는 존재론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범주론과 형이상학에서 실체의 개념은 사뭇 다른 면이 있다. 오히려 형이상학에서 실체의 본성을 알기 위하여 범주의 개념이 단순 문법적인 것에서 존재 사유적으로 확장되었다고도 여길 수 있을 만큼 형이상학에서의 논의는 매우 진중하다.


범주론은 ‘이름은 같은데 뜻이 서로 다른 것들이 동음이의어들이다..’로 시작한다. 이 의미는 단지 문자의 형태만 공통적인 것, 더 나아가 의미까지도 공통적인 것들을 구별하며 단어에 대한 어떤 규칙적 성질에 관한 연구를 암시하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에서 실체, 양, 질에 대해서는 매우 소상히 다루고 다른 범주들은 간단히 언급하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범주 안에 하위집단이 있다고 하는데 불명확한 점이 있다. 


명제론은 전칭 긍정, 특칭 긍정, 전칭 부정 및 특칭 부정 명제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다룬다. 양립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다루며 서로 반대의 개념에 있는 명제들이 있으면 어떤 명제들은 모순 관계에 있기도 하다. 이러한 명제들 사이의 관계도 일반적인 규칙이 있다. 전칭 긍정과 전칭 부정 명제는 분명히 서로 반대 관계이다. 모순 관계도 일반 규칙화될 수 있는데 전칭 긍정과 특칭 부정, 전칭 부정과 특칭 긍정을 서로서로 모순 관계에 있다. 반대와 모순 관계로 엮이지는 않지만, 특칭 긍정과 특칭 부정 사이에는 동시에 참은 가능하나 동시에 거짓은 불가능한 특별한 관계에 있다. 이러한 명제의 특징적 관계들은 이제 복수 명제들의 집합적 관계를 다루는 삼단논법의 논의로 발전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범주론과 명제론은 논리의 개념과 판단 및 추론을 위한 논리학의 한 부분으로 끼워 넣지 못할 수도 있다. 소위 분석론과 변증론에서 범주가 사용되고 명제론에서 명사, 동사 및 형용사 등에 대해 다루고는 있지만 크게 이들은 논리학이라기보다는 문법에 가깝다. 그러나 논리학의 도구는 언어이고 언어의 원소는 낱말이므로 비록 문법적 논의라 할지라도 문장의 규격을 논하므로 논리학에서 시작 지점이 된다고 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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