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적 개요
플라톤은 이데아에도 위계가 있어 가장 최고의 궁극적 이데아를 선이라고 하였다. 선의 이데아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으뜸 원리이자 세계의 궁극적 목적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를 위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으로부터 이와 같은 목적론의 관점을 이어받았다. 이데아를 인정했지만, 이데아는 사물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물에 내재하는 존재로 여기고 이를 형상이라 하였다. 형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진정한 학문은 형상을 탐구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가르침이 중요하지만, 형상은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자연현상이란 구체적인 사물들의 변화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한 최초의 인물이자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관찰과 이론 사이의 관계를 정립한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사회과학 및 인문과학 등 인간 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 또한 포함한다. 이전의 모든 학문을 집대성하고 자신의 사상을 모든 학문에 남긴 인물로서 플라톤과 더불어 근대 이전 시대의 최고 학자이다.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인물이 두 명 나온 경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빼고는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 철학자들의 사유 표현은 넓은 의미로 문학에 가까웠다. 파르메니데스처럼 운문으로 표현하거나,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이 짧은 단문인 아포리즘 형식, 또는 플라톤처럼 대화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사유를 펼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산문의 형식으로 자신의 사상을 남겼다. 방대한 저술을 통해 학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였다. 학문 체계를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세분화하여 물리학, 동물학, 윤리학, 정치학, 시학, 논리학 등 학문의 명칭을 붙였다. 또한 학문이 무엇을 얘기하는가에 따라 이론 학문, 실천 학문 및 예비학 등으로 나누었다. 이론 학문은 자연과학 및 형이상학으로, 실천 학문을 윤리학과 정치학으로 그리고 이론과 실천 학문을 수학을 위한 예비 학문으로 논리학이 있다. 그 외 기타 시학이나 수사학까지 학문 세계를 조직화하였다. 오늘날 쓰이는 학문 이름들이 모두 그에게서 유래되었다.
그의 저술은 300쪽의 책 45권의 분량이다. 물리학, 천문학, 기상학, 동물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과 심리학, 인식론, 정치학, 윤리학, 신학(형이상학) 등의 사회과학과 수사학과 시학의 인문과학, 그리고 이들 학문의 기반을 위한 준비 도구로 활용되는 논리학이 있다. 저작들은 경험에 기인한 구체성을 가지고 있고 경험이 닿지 못하는 영역에서는 합리적인 연역 체계를 이루고 있어 조화를 이룬다. 다른 한편으로 철저히 경험에 입각한 구체적인 체계를 세워가면서도 학문은 필연적이고 보편타당한 연역의 바탕에 있어야 함을 잊지 않았다. 오늘날 서구 문명을 지배하는 참과 거짓을 따지는 연역적 사고는 그의 논리학에 준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과 생물학과 같은 자연과학의 공헌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의 탐구에 대한 방법론을 정립하였다. 그가 생각한 과학적 탐구는 관찰로부터 일반 원리를 발견하고 일반 원리를 기초로 더 근본적인 원리를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개별적인 관찰로 일반 원리를 끌어내는 귀납의 과정과 일반 원리에서부터 출발하여 더 근본적인 원리를 도출하는 연역의 과정을 모두 중요시하였다. 귀납에 두 가지 유형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단순 열거로 개별적 사건 또는 종에 관한 언명으로부터 개체가 속하는 종 또는 류에 대한 일반 원리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직관적인 귀납으로 감각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자료 중에서 근본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으로 과학자의 통찰력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후자가 오늘날 과학자가 과학 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학문을 그저 나열하여 저술한 것이 아니고 모든 학문을 통일의 관점에서 체계화시킨 것이다. 보다시피 그의 수정된 이데아 개념은 자연을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데 우리가 감각으로 알고 있는 자연은 변화무쌍하다. 그러므로 수정된 이데아 개념에서 얻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운동 또는 변화이다. 저작 전체에 운동 또는 변화가 체계적으로 다루어졌다. 저작을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무생물과 생물의 운동과 변화를 다루는 자연학, 생물 일반을 다루는 영혼론과 동물 일반에 관한 동물 운동론, 인간의 운동 또는 변화를 다루는 윤리학과 정치학, 마지막으로 자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다른 것을 움직이는 동력을 주는 신(부동의 원동자)이 다루어지는 형이상학으로 무생물에서 신까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변화에는 그것에 합당한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모두가 목적에 부합하는 질서 속에 있고 규칙적인 것은 우연일 수 없다. 사물들이 고유한 근거가 그것들의 궁극 원인, 즉 그것들의 목적 규정에 있다고 보았다. 자연의 목적론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 이미 나온 바 있다. 목적론적 자연의 준거로 그는 모든 학문을 통일하고자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및 인문학을 목적론적 법칙 하에 통일한 인물이다. 그는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모든 학문을 하나의 법칙 하에 통합한 인류 최초의 통일장 이론을 구축한 장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