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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Feb 02. 2021

이데아와 실제

이데아와 자연 탐구의 한계

플라톤 체계의 중심체는 이데아이다. 도덕적 가치 등 무형의 윤리적 개념이나 수학의 삼각형과 같은 추상적 상징, 더 나아가 개별 사물들도 모두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데아가 이렇게 정의되지는 않았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윤리적 판단의 타당성에서 먼저 찾았다. 윤리적 개념이나 판단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이기 위해서 이데아를 상정하였다. 도덕적 가치는 불변이고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개념이며 객관적 본질이므로 최고의 선의 이데아라고 하였다. 이것이 플라톤이 구축한 윤리적 형이상학이다. 이처럼 도덕적 가치들에 대해 이데아를 얘기한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별적 실체들도 이데아를 가지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실체가 종적 본질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또는 미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일반 개념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데아의 개념을 개별 실체로까지 확장하여 이데아들 사이의 관계와 감각적 대상과 이데아 사이의 관계를 더욱더 정밀하게 고찰한 셈이다.


그러나 모순과 의문은 개별 사물에 씌워진 이데아에서 생길 수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우리가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개별 사물은 독립적으로 영원불변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이 둘의 관계에 의문이 든다. 티마이오스에서 우주를 설명할 때 영원불변의 원리와 독립적으로 실제 경험 세계의 원리를 따로 상정한 바 있다. 전자는 이데아이고 후자는 질료이다. 그런데 둘은 서로 분리되어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만족할 만한 해석이 필요하다. 생명이 있는 사물은 영혼에 의해 이데아가 전달된다손 치더라도, 생명이 없는 사물에 담긴 이데아는 어떻게 무생물의 비이성적 사물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또한 이데아로 사물의 점진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우주를 논함에 있어 데미우르고스라는 신을 동원한 것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임시방편인 것처럼 여겨진다. 자연 세계를 신화나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적이든 이성적이든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인상이 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이데아의 다른 이름으로 형상(form)을 내세워 형상이 사물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형상이 사물과 분리되어 있고 초월적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은 사물에 내재하여있다. 형상은 사물의 재료인 질료와 영원히 결합하여 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개별적 사물은 질료와 형상이 결합한 것이며 사물은 형상 때문에 운동하거나 변하거나 성장하거나 발전한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의 세계가 이데아의 모방이나 그림자가 아니라 실제 세계라고 하였다. 우리의 세계는 형상과 질료가 하나를 이루는 참된 세계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는 명확하다. 둘 다 어떠한 개념어들은 존재하는 어떤 무엇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런데 플라톤은 그 어떤 ‘무엇’이 감각적 지각의 이면에 존재하는 이데아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갈색의 책상을 보고 있다면 우리는 갈색과 책상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어야만 그것이 책상이고 갈색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무엇’을 지각 가능한 현상 가운데 존재하는 형상이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우리가 본 것들이 실제라고 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관찰을 정당화시켜 준다.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각각의 사물들뿐이므로 우리는 감각과 이성의 도움으로 사물 안의 보편적 형상을 구별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감각과 이성은 동등한 것이지 어느 한쪽이 무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과 같이 감각 경험을 불완전한 지식으로 여기면 자연을 관찰하여 무언가를 알아내는 일은 헛수고로 여겨질 뿐이다. 그러므로 플라톤의 이데아는 철학의 관념론 틀 안에서 정당성을 가진다. 이 정당성은 철학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지만, 과학이 가지면 절대로 안 되는 금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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