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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Jan 29. 2021

티마이오스

이데아와 자연 탐구의 한계

플라톤이 이데아를 그의 중심 사상으로 밀고 있는 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치에 이데아를 기본 원리로 넣으려 한 시도는 현실성에서 막혀 버린 것 같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영역은 이데아 세계와 함께 존재하는 현실 세계이다. 플라톤의 으뜸 원리는 곧 이데아이므로 그 원리로부터 자연이 설명되어야 하지만 자연은 이데아의 모사일 뿐이다. 이데아와 대척 관계에 있는 것이 자연 세계이다. 영원하고 불변한 원리들로 어떻게 감각의 변화무쌍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가? 덕이란 덕목이야 완전함으로 밀고 나가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자연 세계의 여러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려고 해도 이는 이데아의 모상으로 허상에 불과하므로 불완전하다. 어차피 불완전한 자연 세계를 우리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자연 세계는 단순 환상이 아니라 실재한다. 문제는 이데아와 자연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그 어떤 무엇이 없다. 자연을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무엇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플라톤은 자연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원리를 상정한다. 이 원리는 감각적 실재가 불완전하듯이 이데아와는 정반대 되는 것으로 실재 자연 현상계의 기초가 되고 물질이 만들어지는 원재료를 제공하는 질료의 원리이다. 우리가 보는 자연은 질료의 상호작용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계에는 두 개의 원리가 존재하는데 사물의 최고 원리인 이데아와 불완전하나마 이데아의 모사품인 열등하고 부차적인 원리인 질료가 있다. 플라톤은 이를 기반으로 자연의 설명을 시도한다.


플라톤의 자연에 관한 대화편인 ‘티마이오스’는 일종의 우주론으로 우주를 조화롭고 질서 정연한 것으로 보고 우주의 원리와 근본 요소와 원인 등을 탐구하였다. 특이한 점은, 자연을 설명하는데 신을 개입시키므로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과학과는 매우 다르다. 그렇다고 당시의 사상가들이 자연을 논하는데 신을 반드시 끌어들인 것은 아니다. 플라톤의 이 방법은 당시에도 매우 드문 경우이다. 티마이오스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인과 관계에 의한 기계론적 세상이 아니고 창조주인 신성한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이다.


우주는 본시 시작된 시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세상이므로 영원불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를 만든 신인 데미우르고스는 무(無)로부터 창조한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원소들로부터 물체를 만들어내었다. 원래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는 존재하고 있고 이것이 질료의 원리이다. 그의 역할은 질료인 요소로 물질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미우르고스는 자연의 건축자이지 창조자는 아니다. 신은 우주 자체를 건축하기에 앞서 우주의 영혼을 먼저 창조하였다. 우주 영혼은 존재와 생성 사이의 균형을 만들므로 신은 영혼에 근거하여 우주를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데미우르고스는 자연과 지성에 있는 모든 능력의 원천이다.


물질의 기본으로서 흙, 물, 공기 및 불의 4 원소는 근본적이 아니라, 이들의 서로 다른 성질은 각각을 구성하는 더 근본적인 것들의 다른 형태에 기인한다. 근본적인 것은 이등변 삼각형과 부등변삼각형의 두 가지이다. 4 원소의 생성과 변환을 요소 삼각형들의 결합과 해체로 설명하며, 나아가 사물들의 성질을 요소 삼각형들의 결합으로 성립된 정다면체의 구조에 의해서 설명한다. 불, 공기, 물은 부등변삼각형을 요소로 하여 구성되고 흙만은 이등변 삼각형을 요소로 해서 구성된다. 이들의 생성 및 변화는 요소 삼각형의 결합과 해체로 정해진다. 그러나 흙은 제외되는데 유일하게 이등변 삼각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조합으로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사면체 및 정이십면체가 만들어지는데 이들은 각각 흙, 공기, 불 및 물에 대응된다. 4 원소가 더 근본적인 무엇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유는 현대 물리학의 관점에서 원자가 쿼크 등의 기본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바와 질적으로 일치한다. 플라톤이 제시한 다면체는 속성상 가장 등변 삼각형의 여러 다른 조합으로 구성되므로 조합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하학적 대칭성의 규칙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현대 물리학이 얘기하는 쿼크 등의 기본입자는 대칭성에 준거한 기본 법칙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우주에 신들, 새들, 동물이나 물고기의 4종류의 생명체가 있고 지각의 과정과 인간 육체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도 설명한다. 여기서 인간 육체는 신 자신을 모방한 것이라 언급하여 기독교적 창조론과 유사한 면을 보인다. 인간 신체의 장기들과 그들의 기능 및 인간의 병에 관한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우주와 함께 인간 신체가 다루어지는 이유는 우주와 신체를 대, 소우주로 대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대우주인 우주 전체의 기원과 구조를 소우주인 인간 신체의 본성을 다루고 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에 준거하되 감각으로 포착되는 우주를 최대한 일관되게 그려내려고 노력하였다. 우주론은 신을 끌어들인 목적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실재를 목적적이고 질서 정연한 우주로 설명하고 자연을 이성의 지도를 받아 최고선을 향해 가는 체계로 설명하였다. 다만 이미 언급한 것처럼, 티마이오스에서 자연에 대한 구상은 자연 자체에 대한 피상적인 설명만을 제공할 뿐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에 관해서는 설명이 매우 부족하다. 그러므로 현상의 피상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그가 남긴 저작 중에 자연과학에 관한 기술은 30여 편 중에 단 한 편, 분량의 비율은 약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인간과학에 대한 기술이다. 이처럼 이데아가 있는 한, 자연에 대한 설명은 아주 작은 한 부분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데아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연과학의 발전은 반비례한다. 오늘날이 자연과학은 인간과학과 더불어 그 위력을 새삼 실감하는 시대인 것을 고려하면 이 점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해결하려 시도한 것은 천재적 과업이라 할만하다.


티마이오스는 30여 편에 이르는 대화편 중에서 유일하게 중단 없이 전승되어 온 작품이다. 다른 대화편은 고대 말기에 사라져 르네상스에 와서야 유럽에 알려졌지만, 티마이오스만큼은 로마 시대와 중세에 계속 전승되어왔다. 특히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창조를 철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중세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기원후 4세기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 철학을 기독교 신앙의 한 부분으로 편입한 주 내용은 플로티노스의 일자 개념과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우주 건축에 관한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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