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데아를 의미론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상정하여 이데아를 인식론, 윤리학 및 형이상학의 문제 해결의 기본 원리로 내세운다. 그가 굳이 ‘국가’라는 제목의 대화편에서 이데아에 관한 사유를 자세히 논하는 이유는 이데아를 으뜸 원리로 삼아 이를 정치에도 적용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의 이데아 개념이 인간과 사회에 적용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실용성보다는 사변적 관념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처럼 여겨진다. 그가 내세운 철인 왕의 개념은 국가에서도 이상적이라고 명시한다. 실현 불가능이란 뜻이다. 그 후에 써진 정치가와 법률에서는 이데아를 완전히 이해한 철인의 역할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개인은 혼자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집단을 이루어 삶을 영위하는 사회가 점점 더 커져 많은 교류와 물품이 더 요구될수록 더 복잡한 정치 질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것 말고도 플라톤은 어떤 기준을 세워 국가 체제를 반드시 쇄신할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교류를 맺고 있었을 당시에 그는 두 다른 정치 체제를 경험한다. 참주정이 폭정으로 막을 내리고 민주정이 들어선 것이다. 귀족 집안의 자제인 그의 희망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사형으로 몰아넣은 아테네 민주정은 플라톤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혔다. 이 일로 철학에 몰두하게 되었고 철학을 통해 정치 개혁 또한 얘기하려 했다.
플라톤이 왜 민주정을 가혹하게 평가했는지 이유를 알기 위해서 당시 아테네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 생존 당시의 정체는 과두정과 민주정이었다. 과두정이란 관직의 주요 기준이 재산으로 평가되는 금권정치이다. 금권정치는 통치가 돈에 의해 좌우되므로 올바른 통치자를 기대하기 어렵고 부의 양극화가 가중되며 더 큰 문제는 통치가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어 부에 만족을 모르는 극소수와 시민으로서 기본적 삶의 영위가 불가능한 대다수의 거지를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가난한 사람들의 내란으로 과두정은 폐지되고 시민들에게 공정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하는 민주정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정이 시민들에게 평등권을 부여한 것은 좋았으나 자칫 무정부 상태에 이를 수 있을 만큼 자유가 방임되었으며, 공평을 너무 주장한 나머지 일에의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는 위험에 부닥치게 되었다. 모든 관직이 추첨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전문성이 없어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고 대중에 영합하기만 하면 잘하는 정치가 되었다. 그러므로 아테네 정치는 통치 기술이 없는 시민들이 통치하고 민중 선동에만 열을 올려 인기에 영합하여 정작 재능있는 통치가는 쓸모없게 되는 중우정치였다. 적어도 그가 본 당시의 그리스 사회의 참주정과 민주정은 실패한 정치 체제였다.
플라톤은 국가의 사명을 개인의 덕과 행복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데아로서 최고선인 덕을 개인이 얻는 것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덕은 개인 자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국가의 법률은 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선하게 되므로 행복이 얻어지고 역으로 개인은 공공의 행복에 자신의 이익을 종속하여 참된 선이 사회에 반영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보았다. 참된 선을 위해 법률이 필요하다.
국가는 우주와 개인이 대우주와 소우주로서의 조화로움이 강조되듯이 조화롭게 조직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의 계층 간의 조화가 중요한데 이성이 최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최고의 자리에 이성이 차지한 것은 이데아를 으뜸 원리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계층은 크게 통치자와 수호자 및 일반시민으로 나누어 호상 간의 조화를 꾀하여야 한다. 통치자는 지배 계급으로 철학적 통찰을 소유하여 이성 구현을 할 수 있는 자이다. 국가를 보호하는 수호자는 기개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계층으로 국방을 담당한다. 일반시민은 생산자로서 농부, 장인, 장사꾼으로 구성되어 생산을 담당한다. 이들은 욕구 요소를 소유하여 재화를 창출한다. 이성과 기개, 욕구는 지혜와 용기 및 절제의 덕으로부터 얻어지므로 원리에 근거에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이다. 국가가 스스로 다스릴 조건은 통치자와 피통치자가 서로를 인정할 경우로서 각 계급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일을 수행하며 다른 계층의 업무에 개입하지 않으므로 정의가 실현된다.
플라톤이 생각한 국가는 사유 재산이 존재하지 않고 상위 두 계급에 아내나 자녀를 공동 소유를 권장하여 결혼을 불허하고 일부일처제가 없는 사회였다. 더 나아가 혼인과 출생을 우생학적으로 조절하고 부모는 자녀 접촉이 안 되고 공적 기관에서 양육되며 의무 교육을 시행한다. 통치자는 이데아를 이해하는 철인 왕이거나 이에 가까운 자만이 국가를 다스린다. 얼핏 보아도 인간의 기본권은 침해되었고 개인의 사적 영역은 박탈되어 전체주의적 색깔이 강하다.
그는 이상에 가까운 정체를 순서대로 군주/귀족정, 명예정, 과두정, 민주정 및 전제정으로 분류하여 덕목들이 하나씩 상실하며 정체가 바뀐다고 하였다. 지혜, 용기 및 절제의 덕목 가운데 지혜를 잃으면 귀족정에서 군사 정권 통치인 명예정으로 바뀌며 용기의 덕목이 결여될 때 과두정이 들어선다. 그러므로 과두정은 절제는 가지고 있는 상태인데 이마저 상실하면 민주정이 들어선다고 보았다. 민주정에서 전제정은 불의가 사회를 점령해버릴 때 나타나는 정치 체제라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제안한 이상국가는 글자 그대로 이상적이다. 플라톤 자신도 실현 불가라고 하였고 최대한 가까이 가는 게 목표라고 하였다. 그렇더라도 실제 사회의 조직과 경영에 지침이 될 수 있는 가치는 있다. 그가 제안한 많은 부분이 스파르타에서 실현되기도 하였다. 그의 국가 체제는 후기 작품인 법률에서 철인왕 체제를 포기하고 이데아를 정치에 접목하려는 시도를 철회한다.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 실제 정치 체제와 이상 국가 체제 사이의 정체를 주장한다. 성인 남성 시민이 구성하는 민회가 있고 임명직은 투표로 선출하고 사유 재산과 결혼이 허용되어 시민은 좀 더 자유롭고 정부에 참여하는 면에 강화된다. 법률에서는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여 통치자의 덕목인 지혜를 인치가 아닌 법치로 구현한다. 그리고 보다시피 민주정치와 일인 통치체제의 혼합정치 체제를 제안하여 실제적 정체의 구현을 제안한다. 혼합정체는 권력의 분산과 균형을 고려한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후대에 많은 비난을 받는다. 전체주의를 주장하는 것 같은 그의 논리는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주 무대였던 서구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나치 등의 전체주의의 연원은 플라톤의 국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상 정치는 이데아와 깊은 관계가 있어 본래의 국가 성립과 국가 변천의 마지막에 이데아는 안착하여 있어 중간의 단계는 변화를 거듭한다. 원래 이데아에 가까운 사회가 부패, 퇴보를 거듭하여 궁극적으로 형상이나 이데아를 닮은 이상 국가를 이룬다고 그의 국가론은 주장하지만, 그가 예측하는 이상 국가는 전형적인 닫힌 사회로서 전체주의의 사회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철학은 근대에 들어와서 독일 낭만주의, 비합리주의 철학인 관념론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유물사관으로 이론이 집대성되었고 20세기의 사회주의와 파시즘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통치자인 철인왕의 사람 됨됨이가 20세기의 독재자와는 전혀 반대의 상이다. 플라톤이 내세운 철인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독재자가 아니라 너무나 올곧은 이데아의 빛 가운데 있는 성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