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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Aug 08. 2021

에테르

세기말의 물리학

전자기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맥스웰 방정식이 구축되었을지라도 전기 현상이 전기를 띤 입자 알갱이 같은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입자 알갱이로서 전자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에 전하는 단순히 장의 산물이고 전류의 흐름은 장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작용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도체 표면이 전기를 띠는 이유는 공간 전체에 분포해 있는 전기장이 도체와 상호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이고 절연체는 장에 의해 절연 입자가 역선을 따라 분극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전류도 전하를 띠고 있는 물질적 입자의 작용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러한 개념은 원격력의 개념보다는 발전한 것이지만 정확한 개념은 아니었다. 원격력의 개념은 전하를 축전기 안의 유체 같은 물질로 생각하고 축전기 내부의 전하가 원격으로 상호작용하여 전기와 자기력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하였다.


이 문제는 톰슨이 전자를 실험적으로 직접 발견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전자의 발견으로 전하가 단순히 장의 작용이 아니라 전기를 띤 물질 입자가 전기장을 형성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하가 장의 산물이라는 생각에서 전하를 띤 입자가 스스로 존재하는 장의 개념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장이 모든 작용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와 같은 전하가 물질 내에 실제로 존재하며 전하 자신이 만드는 장에 의한 작용이나 주위에 다른 장이 있으면 서로 간에 장의 작용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위의 장은 스스로 전자기장으로 운동에너지를 얻는 전자와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장에 대해 올바로 해석된 물리적 개념은 전기와 자기의 현상을 넘어 물리 세계 전반에 대한 새로운 기본 개념이 되었다. 후일 장의 개념은 현대물리학의 발견 통로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입자물리학의 통일장 이론 등의 모태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전자가 발견되어 장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바뀌었어도 맥스웰 방정식은 변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방정식에 변함없이 따라다니는 에테르의 존재였다. 장의 새로운 개념은 에테르의 종류를 다변화시켰는데 해석과 수학적 표현에 따라 달랐다. 맥스웰이 적용한 에테르는 바퀴와 같은 운동에너지와 용수철과 같은 위치 에너지를 상정한 것으로 동역학적 에테르라 이른다. 전자가 발견된 후에 장의 새로운 개념을 위해 도입된 전자기적 에테르는 전자기장으로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와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것이었다. 에테르의 개념은 틀과 톱니바퀴, 도르래와 끈 또는 소용돌이 스펀지의 형태 등 더 정교한 역학적 모형으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에테르 모형이 개발되었을지라도 에테르를 물질로서는 등한시 여기는 경향은 한결같았다. 에테르는 소용돌이 운동을 하며 지나가는 점들의 궤적이거나 독특한 성질을 가진 비틀림을 받는 점들의 궤적 정도로만 취급되었다. 이 때문에 푸앵카레는 에테르가 물질로 존재하는 것에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에테르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시되지 않았고 굳이 없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에테르 모형으로 올바른 방정식이 구축되었고 모든 파가 매질이 있어야 전달되는 마당에 그 누가 전자기파는 매질이 없이 전파된다고 하겠는가? 우주 공간이 에테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의심이 여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에테르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 옛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천상 세계의 물질로서 제5원소인 에테르를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주장한 대로 진공은 존재하지 않고 물체의 운동이 반드시 접촉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면 에테르는 어디에서도 있어야 했다. 에테르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위 또는 아래로의 직선 운동하지 않고 지구 주위를 영원히 도는 원형 운동만 하는 물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우주 공간이 뭔가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은 모두 에테르의 영향이다. 진공은 존재한다는 게 밝혀졌어도 여전히 에테르의 존재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데카르트가 우주 공간이 플레넘이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입자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 개념의 수학적인 표현은 에테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어떠한 경우도 맥스웰 방정식으로 귀착하였다. 맥스웰 방정식이 수정될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에테르 없이도 성립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1887년에 마이켈슨 Michelson과 몰리 Moley는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파의 간섭현상을 이용하여 일련의 실험을 진행하였다. 간섭은 두 개 이상의 파가 한 점에서 만나서 합쳐질 때 중첩되어 보강되거나 상쇄되는 현상으로 밝고 어두운 띠의 형태로 나타난다. 만약 파들이 정확히 같은 경로로 같이 한 점에서 모였다면 간섭현상은 없다. 에테르가 우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이들의 존재를 간섭현상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에테르의 속도는 지구의 자전 속도와 같다. 지구가 자전하므로 지구상에서는 지구는 정지해 있고 에테르가 자전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관측된다. 공전하는 지구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빛과 에테르의 속도가 서로 상쇄되거나 보강 또는 변화 없는 세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간의 상대속도의 차이 때문에 위상 차이가 생기므로 간섭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러나 간섭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에테르가 없다는 증명이 된다. 당사자들은 실험에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에테르가 설마 없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파동 전달에 매질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에테르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던 당시의 물리학자들은 어떻게든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였다. 지구의 자전 속력에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에테르의 흐름을 상쇄하는 어떤 효과가 있으면 실험처럼 간섭 효과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피츠제럴드 Fitzgerald는 에테르에 대해 운동하는 모든 물체가 운동의 방향으로 특정의 양만큼 수축하면 실험 장비가 에테르의 흐름을 상쇄시키므로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로렌츠 Lorenz는 길이 수축뿐만이 아니라 시간의 지연이 함께 되어야 전체가 맞는다고 하였다. 왜 길이가 수축하고 시간이 지연되는지 이유는 내놓지 않은 채였다. 도출된 로렌츠 변환식 Lorenz Transformation은 에테르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실험 결과를 해석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변환식 자체가 시공간의 절대 측정에 대한 의구심을 함의하였다. 푸앵카레는 절대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두 사건이 동시적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에테르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 결과는 시공간의 상대성으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만약에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느 방향에서나 빛의 속도는 같으므로 빛의 속도는 갈릴레이 변환을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더하고 빼는 상대속도의 개념인 갈릴레이 변환을 더이상 빛에 적용할 수 없다. 갈릴레이 변환 대신에 새로운 변환식이 요구되고 변화는 단순히 좌표 변환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시공간에 대한 기존 개념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빛의 속도와 관련된 중요한 다른 문제가 전자기학에 있었다. 전기와 자기 현상에는 관성계에서 물리 법칙이 불변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존재한다. 정지하여 있는 좌표계와 상대적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등속 좌표계를 생각하자. 두 좌표상의 어느 지점에 전하가 있다. 정지하여 있는 좌표계의 관찰자는 전하에 의해 생성되는 전기장을 관찰한다. 일정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좌표상의 관찰자도 전하 때문에 생성되는 전기장을 관측한다. 그런데 등속 좌표계 상의 관찰자는 일정 속력으로 멀어지고 있는 전하를 관찰하므로 이에 의한 전류를 측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계의 관찰자는 자기장 또한 측정할 것이다. 정지하여 있는 계나 등속 운동하는 계 모두 관성계로서 물리 법칙이 변하지 않아야 함에도 정지좌표계의 관찰자는 전기장을 측정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등속으로 운동하는 좌표계에서의 관찰자는 전기장과 함께 자기장도 측정하게 된다. 이는 관성계 Inertial Frame of Reference에서 물리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이므로 그렇지 않도록 해결해야 했는데 갈릴레이 변환 대신에 로렌츠 변환을 두 기준계에 적용하면 모순이 사라진다. 에테르의 존재 여부나 등속계의 물리 법칙이 위배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제는 전자기학의 단순한 문젯거리였을지도 모르나 이미 푸앵카레가 지적했듯이 시공간에 대한 혁신 사고의 전환을 예고하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식에 전혀 다른 방향의 이유가 양립하는 것 같은 상황을 누군가가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세기말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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