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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Aug 13. 2021

답이 주어져야 할 숙제들

세기말의 물리학

19세기는 전지가 발명되어 이를 이용한 다양한 장치가 개발된 기구의 시대였다. 19세기 중반이 되자 천 볼트 이상의 고전압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장치 가운데 중앙이 불룩하고 가장자리로 가면서 가늘어지는 구조의 유리관 양쪽 끝에 전극이 부착된 크룩스관 Crookes tube은 다방면으로 활용되었다. 기초 과학 실험의 목적으로 쓰였을 뿐만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눈 요깃거리로서도 톡톡히 몫을 했다. 양극에 고전압을 걸어주면 관의 내부에서 방전이 일어나 음극선의 파란색 광선이 흐르는 현상은 과학자와 대중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음극선은 단지 음극에서 광선이 유발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과학자들은 빛이 에테르를 통해 전파되면서 생기는 어떤 교란 현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음극선의 정체가 밝혀지자 물리학계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생각들이 부질없는 것이 되었고 오직 새로운 상상력의 사고만이 올바른 추론으로 이끄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끌었기 때문이다. 음극선의 정체는 음의 전기를 가진 미세한 입자의 흐름으로 밝혀졌다. 1878년 톰슨 Thomson은 크룩스관에 전기와 자기장을 걸어주며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음극선이 지나는 방향에 수직으로 전기장을 걸어주고 전기를 띤 입자가 자기장에 의해 원운동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원운동의 반경은 입자의 질량에 따라 달라지므로 음극선의 전하량과 질량의 비율을 결정할 수 있었다. 톰슨은 이 실험으로 음극에서 음의 전기를 띤 입자가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음극선은 다름 아닌 전자의 흐름이었다. 이 사건은 전자기학의 이론적 완성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물리학의 탄생에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크룩스관은 연일 새로운 현상의 발견에 크게 활용되었다. 뢴트겐 Roentgen은 관으로부터 전혀 예측되지 않았던 눈에 보이지 않는 x-선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베크렐 Becquerel이 암석에서 모종의 방사선을 발견한 것과 퀴리 Curie 부부가 새로운 방사능 원소의 발견을 알렸다. 방사성 원소는 외부로부터의 에너지 공급 없이도 강한 광선을 내기 때문에 그 이유를 밝혀내야 했다. 일련의 발견은 서로 관련이 있었고 이론물리학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후일 방사선을 가지고 하는 일련의 실험은 원자구조의 해명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역학에 기초한 원자론이 구축되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에 또 다른 보편적인 실험은 분광기를 이용하여 원소로부터 발생하는 빛을 관측하는 것이었다. 원소 가스를 가열하면 빛이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하여 원소에서 발생된 빛을 작은 틈새로 통과시켜 빔의 형태로 만든 다음에 프리즘을 통과시켜 나타나는 현상을 관측하였다. 그런데 수소나 헬륨 등의 각 원소의 빛은 오직 특정 파장으로만 분리된 선 스펙트럼의 형태였다. 원소마다 자신만이 가지는 고유의 선 형태로서 오늘날의 바코드처럼 스펙트럼의 형태로 원소를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태양에서의 빛을 프리즘으로 분광시키면 스펙트럼이 연속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선 스펙트럼은 미스터리였다. 선으로 나타나는 것은 에너지가 불연속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자기 이론에 따르면 가속된 전하들에 의한 전자기 복사는 물질 내의 전하들이 무질서한 운동에 의존하기 때문에 모든 진동수의 전자기 복사가 방출되어야 하므로 연속 스펙트럼이 되어야 한다. 파장에 따라 나타나는 선의 구조는 곧 원소가 빛을 받아 반응하는 특정의 에너지 상태로서 원자에서는 에너지가 불연속으로 나타난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선 스펙트럼은 빨간 선에서 노란 선 그리고 파란 선으로 가면서 그 간격이 줄어드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불연속 말고도 균일하지 않은 간격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세기에 개발된 분광 기법은 그야말로 대유행의 바람을 일으켰다. 무엇인가 빛이 방출되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분광기를 가져다 대고 측정할 만큼 과학자들 사이에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난로 등 열을 방출하는 물체가 내는 빛에 관한 분광 연구가 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어떠한 물질이라도 열을 흡수하면 반드시 방출한다. 모든 열을 완전히 흡수하는 가상적인 물체를 물리적으로 고려하는데 이를 흑체 Black body라 한다. 열을 발생시키는 난로를 흑체라고 생각하면 근사적으로 맞다. 열을 밖으로 배출하는데 열이 직접적으로 공간을 통해 전달되는 현상을 복사 radiation라 한다. 물체가 방출하는 열복사의 세기는 물질의 종류와 관계없고 온도와 파장에 따라 달라진다. 흑체는 가열된 정도에 따른 온도에 따라 각각 다른 색(다른 파장)의 빛을 방출시킨다. 쇠의 경우는 처음엔 붉은색이었다가 온도가 올라갈수록 점차 노란색이 되고 결국은 파란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다른 물질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겪는다. 온도가 오를수록 파장이 짧은 쪽의 빛(파란색 쪽의 빛)이 더 많이 방출된다. 빛의 강도가 최고인 파장을 중심으로 이보다 낮거나 높은 파장의 에너지가 모두 방출된다. 그러므로 온도와 파장의 관계 곡선은 극대점을 반드시 가진다. 방출되는 빛의 세기 및 파장을 전자기 이론으로 계산하면 실제 복사량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높은 주파수대에서 복사가 예측되므로 극대점이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극대점이 존재하지 않는 상승이나 하강곡선의 형태만을 예측할 뿐이므로 곡선의 형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특히 파장이 짧은 파장 영역에서 에너지가 무한대로의 방출을 예측하므로 무의미하게 되어 이를 자외선 파탄 ultraviolet catastrophe이라 했다. 


뉴턴 역학의 혁혁한 성공에 힘입은 종말론은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과 몇 가지의 실험 결과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형국이었다.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해서 자연현상을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뉴턴 역학의 성공이 곧 물리학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론물리학은 위의 실험 물리에서 오는 심각한 자극 외에도 전자기학과 에테르의 문제에서 보듯이 이론적으로 진중한 의문들에 대해서도 답해야 했다. 의문은 전자기학뿐만이 아니라 에너지학, 열역학 및 통계역학 등 모든 분야에서 제기되었다. 실험의 진보와 이론적 갈등을 통해 물리적 기초를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서 현대 물리의 창출이 조심스럽게 이끌어졌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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