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에 놓인 비누에 짧은 머리카락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분명 이전에 내가 쓰다가 붙은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보기 좋지 않아요. 비누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멀리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어린 시절 욕실에 갈 때면 종종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어요. 다름 아닌 비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 내 것이 아닌 누군가의 머리카락이죠. 항상 범인은 아빠. 직접 본 적은 없어 왜 꼭 아버지가 쓰고 난 뒤엔 비누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어요. 그 시절 비누를 쓸 때마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거슬리더라고요. 왜?라는 의문을 가지며 내 손으로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순간이 싫었어요. 그런데 20대의 어느 늦가을부터 비누는 깨끗해졌어요. 더 이상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떼어낼 일이 없어졌죠.
몇 번의 이사를 거듭하며 아버지라는 이름 아래 존재했던 물건들도 많이 없어졌어요. 아버지는 더 이상 같은 공간과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새로이 쌓이지 않으니, 허전한 날에는 과거의 어느 순간들로 여행하듯 한 번씩 다녀오곤 합니다. 함께 보낸 수많았던 시간들은 오랜 시간 비디오 돌려보기를 거듭한 듯,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들로 차곡차곡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죠.
병마와 한참 싸우던 중, 딸에게 선물 받은 도라지꽃을 톡톡 터트리며 내 텃밭에도 많다고 농담하시던 그 순간으로. 부엌 한쪽에 선 채로 더덕주 한 잔씩 나누어 마시던 짧지만 강렬했던 술자리로도 가보고요. 눈 쌓인 산자락을 깔깔대며 구르듯 내려오던 추웠던 겨울의 산으로도 가봅니다.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를 빙긋이 웃으며 따라 부르던 아버지의 마른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퇴근 후 매일 같이 약수를 배낭 한가득 지고 현관으로 들어설 때 나던 아버지의 땀내도 맡아봅니다. 비누에 붙어있는 머리카락에도 아름다운 꽃에도 영화 주제가에도 또는 낯선 등산객에도 아버지는 존재합니다. 일상에서 늘 다시 만나곤 하는 아버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