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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환 Jan 04. 2022

내 감정을 인정하자

상한 감정의 치유는 내 감정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살아간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 때 우리는 분노를 느끼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부모나 나에게 가까운 사람인 경우 미워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죄책감을 가져다주어 또 다른 감정적인 무게를 얹어준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일평생 분노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죄책 감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상처는 어려서 부모에게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부모도 초보 부모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고 자녀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서 상처를 받고 그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자녀에게 전가하게 된다. 자녀에게 긍정적인 자화상을 심어주기보다는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자녀의 마음속에는 큰 상처가 생긴다.


  부모는 자녀에게 비교를 통해서 상처를 주기도 한다. 형제간에 비교를 하기도 하고, 부모의 친구와 자녀를 비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누구와 비교를 하든지 비교는 결코 달갑지 않다. 대게 비교는 상대방의 우월함과 나의 열등함을 비교하는 것이다. 동창회에 다녀온 엄마가 불쑥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 친구 명숙이 아줌마 알지? 그 아들이 이번에 서울의 어떤 대학교에 들어갔다 더라.” 물론 “너는 왜 그런 학교에 못 들어가니?”라는 말을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그 부러워하는 말투에서 자녀는 이미 상처를 받는다. 엄마의 말이 “아이고 내 팔자야! 왜 내 아이는 이렇게 공부를 못하는 거야”라고 자녀에게 들리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받은 이런저런 상처들이 겹겹이 싸여서 오랜 세월 동안 분노를 만들고, 그것이 해소되지 않고 성장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상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게 만드는 것이다. 정작 더 놀라운 것은 부모는 자녀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 나서도, 자신은 자녀에게 상처를 준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상한 마음의 치유”강의를 하면서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경우, 부모님에게 가서 “내가 어렸을 때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내게 평생 상처가 되게 하셨냐”라고 대화를 해보라는 숙제이다. 그러면 학생들이 돌아와서 하는 말은 대부분 같은 대답이다. 부모님에게 “왜 그러셨어요? 왜 제게 그런 상처가 되는 말을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부모님은 “내가 언제 그랬니?”라고 대답한다. 정말 부모가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자녀는 오래전에  상처를 받고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부모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를 주려고 일부러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에게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고, 애가 사람을 잡는다고 억울한 표정을 짓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와 이런 대화를 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왜 이런 뻔한 숙제를 내주는 것일까? 이미 몇십 년이 지난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를 부모와 꺼내어서 무슨 도움이 된다고 이런 숙제를 내주는 것일까? 그 이유가 있다. 어렸을 때 상처를 주었던 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모가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부모도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녀에게 이런 상처의 말을 했다는 것을 공감하는데 초점이 있다. 부모가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하여, 상처를 준 것에 대하여 사과를 하면 좋겠지만, 사과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대화의 목적은 부모에게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 그런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상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상한 감정은 피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상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으로 인해서 나에게 상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피해자이다. 자신이 누군가가 준 상처 때문에 일평생 고통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 상한 감정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상한 감정에서 벗어나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노할 수 있다. 죄책감을 가질 수 있다.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내 탓이 아니라,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게 있는 그런 상한 감정 보듬어 주며 살아갈 때 점점 분노와 죄책감의 감정에서 자유롭게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 우리가 어떤 감정을 가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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