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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동환 Jul 26. 2019

외할머니와 달걀 프라이

기억을 먹는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단순히 한 끼를 해결하려고 먹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음식은 그 음식을 먹을 때 형성되었던 기억을 먹는 음식이 있다. 내게도 그렇게 특별한 음식이 있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늘 마음에 기억되는 음식은 ‘달걀 프라이’이다. 나는 지금도 ‘달걀 프라이’를 보면 외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교를 진학하기 전에 유아시절에는 외가댁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우리 집에는 자녀들이 4명이었다. 요즘에는 보통 하나나 둘을 낳지만, 옛날에는 자녀를 여러 명을 낳아 기르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도와준다고 나를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도록 했기 때문에 나는 많은 시간을 외할머니 댁에서 보내야 했다. 외할아버지는 나를 각별히 좋아하셨다. 형제들 가운데 내가 외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특히 외할아버지는 대머리셨는데, 내가 이마가 넓고 머리숱이 없다 보니 나에게서 동족 의식(?)을 더 느끼셔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정작 외삼촌은 대머리가 아닌데 오히려 내가 머리숱이 적은 것을 보면서 외할아버지는 나를 더욱 좋아하신지도 모르겠다. 어찌했든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내게는 부모님 만큼이나 가깝게 느껴지는 분들이셨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서도 외할머니 댁에 종종 가면 외할머니는 내게 비빔밥을 해주시고는 했다. 외할머니는 비빔밥을 할 때면 항상 ‘달걀 프라이’를 야채 위에 올려주셨다. 내가 중학교 시절만 해도 ‘달걀 프라이’는 귀한 음식 중의 하나였다.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갈 때 어머니는 가끔 도시락 밥 위에 ‘달걀 프라이’를 하나 덮어 주시고는 했는데, 그것은 당시에 아주 호화스러운 도시락이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여름 주말에, 나는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그날도 점심식사로 외할머니는 비빔밥을 준비하고 계셨다. 당연히 비빔밥에는 ‘달걀 프라이’가 올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비빔밥 그릇을 들여다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 날은 비빔밥에 ‘달걀 프라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늘 외할머니가 비빔밥을 해 주실 때마다 ‘달걀 프라이’가 있었기 때문에 의아한 마음에 외할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 오늘은 비빔밥에 ‘달걀 프라이’가 없네요” 그리고 야채와 고추장을 비벼서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좀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외할머니를 바라보니, 외할머니는 울고 계셨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가 우시는 일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눈물을 닦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왜 우시냐고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시면서 “이제는 너도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더욱 당황하며 외할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 제가 언제 할머니를 무시했다고 그러세요. 저는 할머니를 무시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날 외할머니에게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할머니가 어떤 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였는데, 외손주까지 밥을 먹으며 '달걀 프라이’가 없다고 타박을 하니, 할머니를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들렸던 것 같다.


  그날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사람은 연세가 들면서 마음이 더욱 약해지는 것이구나. 작은 일에도 마음이 슬퍼지고, 오해를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날 외할머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더 이상 여쭈어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에는 외할머니에게 말씀을 드릴 때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비빔밥과 달걀 프라이를 통한 할머니의 눈물을 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배려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모든 말을 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가 말을 할 때 그 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연세 드신 분들과 대화를 할 때 외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그분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말하는 것을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에 슬퍼할 수도 있고, 마음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화에 더욱 신경을 쓴다.


  요즘도 나는 가끔씩 집에서 비빔밥을 해 먹을 때가 있다.  ‘달걀 프라이’를 하나 해서 비빔밥 위에 올려서 먹을 때, 그 ‘달걀 프라이’에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던 그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비빔밥을 먹는 것도 사실은 비빔밥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먹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그 두 분들을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마음이 비빔밥과 ‘달걀 프라이’를 더 먹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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