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리스 신화 말인가?"
"예. 아비를 죽이고, 어미랑 결혼을 하고는 장님이 된..."
"내용은 알고 있네."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가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일비재한 일이라는 것을...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오이디푸스가 갓난 아기일 때 이미 운명을 예고 받았듯이, 셋째 도련님이 갓난 아기이던 때에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집안을 풍비박살낼 운명을, 그 마수가 삼 대에 뻗쳐 어르신 내외 뿐 아니라 도련님들과 아내, 그리고 그 자식들까지 때 이른 죽음으로 이끌 운명을 예고 받은 것입니다.
누구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어설픈 말로 모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하지만 인륜을 저버리지 않고서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 아니겠습니까? 누가 남의 가정사 때문에 인륜을 저버리겠습니까? 결국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것은 어르신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들, 그 당시에는 정정하셨던 큰어른까지, 어르신의 꽉 다문 입술을 주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야 할 처지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 혹여나 너무 오래 고심하다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지, 조바심이 담긴 시선.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섭도록 차가운 시선...
결국 어르신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때 하셨던 말은 제가 기억하고 있지요. 오랜 시간 옆에서 어르신을 지켜봐온 저 역시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때 하셨던 말이...
"이 또한 운명이다. 나 하나 보신하자고 천륜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앞으로 이 일은 언급하지 않겠다."
였지요. 셋째 도련님은 걱정과는 달리 반듯하고 총명하게 잘 자랐습니다. 어르신은 셋째 도련님의 수학에 특별히 관심을 두는 듯 했습니다. 아마 학문을 닦는 일이 곧 인격을 수양하는 일이라는, 이제는 거의 사장된 선비스러운 믿음이 있으셨기 때문이겠지요."
"잠깐."
"왜 그러십니까?"
"이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도련님."
"You... 누구야? 그 시절에 있던 사람이라면 내가 모르지 않을텐데."
"저는 지나가는 중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요. 그보다 중요한 것은 도련님의 선택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르신이 그랬듯이, 운명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도련님에게 생명을 준 그 운명을? 아니면, 죽음을 몰고 다니는 저 운명을 거스르는 자들의 대열에 합류하시겠습니까?"
"You, 조선인이 아니군."
"그것이 중요합니까?"
"그래. 중요한 것은 아니지. 자네 말이 진실이라면 기억해 둘만한 이야기야. 하지만 자네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자네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변하지 않네. 기호지세라, 결정을 바꿀 수는 없어."
"아직도 죽음이 부족한 것입니까?"
"한 마디만 더 하면 가만 두지 않겠네."
https://www.youtube.com/watch?v=JGJPVl7iQ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