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초

by 김동휘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지런한 인간들이 모인 시대에 살고 있는 2025년.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고 인간이 다섯 명 쯤 모이면 한 명 쯤은 쓰레기가 자연스럽게 생기듯이 그 와중에도 남다르게 게으른 일상을 보내고 있는 미취업 청년 두 명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


그 중 하나는 그 잘난 대학을 나와 그 잘난 대기업에 들어가 놓고서는 일 년 만에 나와 놀고 먹은지 이 년이 되어가는 청년. 아무리 굶어죽는 사람 없는 시대라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부추기는 욕망이 있을 것이요, 배울만큼 배운 사람으로서 자신도 모르게 키워간 자존심이 있을 것이며, 인간 관계에도 효율성이 중요시되는 이 시대에 그럴듯한 명함 없이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인데. 놀고 먹기도 힘들다는 말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전국의 오백만 놀고 먹는 인간들이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입에 담기는 해도 결국 마음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비탈을 따라 거침없이 가속도를 받으며 굴러 내려오는 철구(鐵球) 같은 사회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 더 이야기가 쉽다. 믿는 구석이 확실한 것이다. 아버지는 안동에서 잘 나가는 알짜 중소기업을 직접 일궈낸 사장으로 또 마침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은 첫 째 형이 도맡아 하고 있으니, 놀고 먹는 일이 대개는 인간의 관계와, 일, 휴식 세 가지 모두를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무너뜨린다면 이 청년의 경우 돈의 위협으로부터는 상당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인간 관계라는 것은 돈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 충족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지는 않는 것이라 고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은 두 축이 지탱하는 법이라, 한 쪽에서 아무 자극이 없으면 다른 한 쪽으로 신경이 쏠리게 된다. 외부적 자극이 소거된 일상을 보내다보면 정신은 자연스럽게 내부로 향하게 되는 법이고, 사회라는 것에 무관심해지게 되면 본성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법인 것이다. 일거리도 없고 처자식도 없으며 사회생활도 없는 이 청년은 달마대사가 9년간 동굴에서 벽을 보고 명상을 했듯이 FHD패널과 벽지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일상적 생활의 유지와 상식에 관심을 두고 때로는 휩쓸리듯 중심을 잃고 끌려가기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모종의 내면적 감각을 발달시켜 온 것이다.


그 내면적 감각이라는 것은 뭘까? 영성과 종교 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명상과 깨달음 같은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선무당이 사람잡고 반풍수가 집안을 망치듯이, 어설프게 무엇인가를 깨달은 양 설치다가는 도미노처럼 차근차근히 건전한 일상을 무너뜨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반풍수와 선무당이 감히 설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진짜 풍수와 무당이 와도 엄정한 과학과 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면 기를 못 펴는 것이 현대 사회이다. 그리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청년들의 머리 속에는 이미 논리라는 운영체제가 뗄레야 뗄 수 없이 자리 잡고 있으니 반풍수와 선무당이 말 한 마디 쉽게 꺼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청년, 사회와 거리를 두고 놀고 먹은 지난 수 년의 시간이, 논리라는 절대법전의 권위도 퇴색시키고 이 시대의 상식이라는 것을 정신 나간 이슈 유튜버의 헛소리처럼 흘려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 청년은, 약간의 취기에 힘입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30초만 세 봐."


안경 낀 청년이 말했다.


"왜?"


검정색 반팔티를 입은 청년이 대답했다.


"일단 세 봐. 딱 다 세면, 무슨 일이 일어날거야."


"무슨 일?"


"15...14 이제 네가 세야 돼."


반팔티의 청년은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1...'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반팔티 청년의 아이폰13의 진동이 울렸다. '0'


"이거야?"


반팔티의 청년이 물었다. 물으면서 새삼 그에게는 '이거야?' 라는 물음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경 낀 청년이 정말 이 놀랍다면 놀랍고 사소하다면 사소한 우연에 대한 설명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신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경 낀 청년은 그에게 그냥 그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자리를 못 잡은 청년1일 뿐이지, 마술사나 무당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한 번 확인해 봐."


안경 낀 청년은 대답같지 않은 대답을 했다.


반팔티의 청년은 아이폰13을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얼굴인식으로 잠금은 부지불식간에 풀렸다.


"어?...오...와..."


반팔티 청년의 뜻 모를 감탄사.


https://www.youtube.com/watch?v=ftdZ363R9k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