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티 어디갔어?"
"엉? 오늘 못 본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불안감이 들었다. 처음 와보는 외국에서 누군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과는 무게감이 달랐다. 그래도, 나이가 스물 셋이고, 관광지 한복판에서 뜬금없이 납치라도 당했을리도 없을테고, 핸드폰도... 그래 핸드폰. 전화를 해보면 되잖아?
"전화는 해봤어?"
"해봤지. 매니저 형은 진작부터 했다던데."
"어엉...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찾아야지."
"응?"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이스탄불에서 연락도 안 되는 한국인 여자 한 명을 어떻게 찾는단 말일까. 그런데 딱히 다른 방법도 떠오르지 않긴 한다.
"이쪽으로 가보자."
한동안 한 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던 곳 구석구석을 뛰어 다녔다. 어느새 우리는 흩어지게 됐고 나는 성당에서 벗어나 어딘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터키 같은 느낌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시골 동네 같은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자그마한 단층 집들을 어깨 높이쯤 되는 회색 벽들이 둘러 싸고 있고 그 벽들이 줄지어선 가운데 놓여진 흙길.
그곳을 지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꽤나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안가는 사납게 생긴 개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나 사람이나 눈빛을 보면 다음 행동을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는 법이다. 저 개는 이 목줄이 풀려서, 가능하다면 당장 나를 물어 뜯을거라고 눈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그 개는 회색 벽 안쪽에, 길가까지는 나올 수 없을만한 길이의 목줄을 매고 있었고 나는 그 개를 무시하고 흙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자마자 이번엔 앞쪽에서 또 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개는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이 안 가는 수준이 아니라, 개인지 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말이 안 되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길 전체를 커버할 수 있을만큼 목줄의 길이도 길었다. 게다가 목줄은 보통 사이즈의 개들과 비슷한 종류의 것을 차고 있었는데, 저 곰 같은 개의 목에 매달려 있기에는 너무 빈약해 보였다. 눈빛은 아까 전의 개와 비슷했다. 할 수만 있다면 너를 미친듯이 물겠다고 말하는 눈빛.
나는 다시 골목길의 초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런 곳에서 만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의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나도 이쪽으로 가야 돼."
"가려고 했는데, 앞에 엄청 큰 개가 있어."
"알아. 그래도 가야 돼. 우리 같이 가자."
같이 간다고 곰 같은 개가 막고 있는 길을 지나갈 묘수가 생길 것 같진 않았다. 그 개는 사람 다섯 명이 덤벼도 이길 수 있을거라고 확신할 수 없는 포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앞에 서 있던 그가 말을 덧붙였다.
"같이 가면 더 나을 거야. 더 낫지 않더라도,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 아니야?"
"그래. 그럼 계획은 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앞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버렸고 나는 아직 채 발걸음을 떼지도 못하고 있었다. 앞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건 미친 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길로 간다고 케이티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케이티가 이 길 뒤에 있더라도 가다가 내가 개한테 물려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런데,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이미 앞서 가버린 친구는 어떻게 하나? 내가 따라가주지 않으면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최악의 경우 시체라도 확인하고 챙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케이티도 케이티지만, 그걸 떠나서 그냥 뒤돌아서버릴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3m는 되어 보이는 개를 생각하면 차마 발 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무언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골목길 옆의 내리막을 따라 왠 군인이 쭉 굴러 떨어졌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갑자기 열 댓 명의 사람들이 내리막 쪽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내리막을 지나다니는 것을 보니 왠지 내리막길로 가도 골목길과 같은 곳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길 아닌가? 한 번 물어나 보자.
"저기, 어디 가시는 거에요?"
"뉴스 못봤어요? 이 쪽에 말벌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대잖아요."
"말벌 구경하러 오신거에요?"
"아니 스릴 있잖아요. 말벌이 득실득실한 곳을 지나가는 스릴."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았다. 놀이공원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다들 스릴을 즐기러 온 거구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말벌이 가득한 내리막길로 향했고 그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되어 나도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갔다.
내리막 길을 중간쯤 지나자 말벌들이 쫓아오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말한대로 말벌은 엄청나게 많았고 만약 저 말벌들이 모두 나를 쏘기로 작정하면 쇼크가 오기까지 십 초도 안 걸릴 것 같다.
나는 미친듯이 달렸다. 달리다보니 어느새 넓은 길목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그 길목은 이전의 골목길과도 이어지는 길이었다. 시골길 같았던 이전의 골목길에 비해 서울 외곽 동네의 길 같은 느낌을 주는 그 길목에는 경찰차 한 대가 서있었고, 경찰 두 명이 아주머니 두 명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저 정신 나간 여자 좀 어떻게 해 봐요!"
"저희가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휴 동네 집값 다 떨어지겠네."
한숨을 쉬는 아주머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니 터키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꼭대기가 보였다. 그런데 그 꼭대기에서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꼭대기 바로 아래 외벽에 붙어 있는 엉덩이 하나 겨우 걸칠만한 발판에 케이티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자살소동이라도 벌이는 걸까? 대체 어떻게 저기를 올라간 걸까?
나는 근처에 와있던 소방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케이티 쪽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데 케이티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점프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케이티가 앉아 있는 곳은 잡을만한 것 하나 없는 발 하나 겨우 걸칠만한 공간이었고 지금 내가 점프를 하려는 이 곳은 지상으로부터 300m 떨어진 곳이었다. 거리는 1미터 남짓으로 평지에서라면 얼마든지 뛸 수 있었겠지만, 공포심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응?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케이티가 아니다. 케이티랑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머리 색깔도 다르고 좀 더 피폐해 보인다. 케이티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 여자를 통해 케이티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아까 곰 같은 개와 말벌 떼를 만나면서 공포심에 적응이 되었는지 생각보다 짧은 고민 후에 발을 뗼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건물 안 쪽으로 들어왔고 그곳에는 케이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전화? 안 왔었어?"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저건 아마 개인용 폰일 거다. 업무용 폰은 일부로 꺼놨거나 어딘가에 치워놓았겠지. 말은 안 해도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일 거다.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잃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행인 건 어쨌든 지금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