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우유를 고를 때는 항상 가장 뒤 편에 놓인 우유를 꺼내 집는다.
보통 맨 뒤에 놓인 우유는 가장 앞에 놓인 우유보다 유통기한이 일주일 정도 더 길다.
평일엔 집에서 잠만 자고 많이 먹는 편도 아닌 나에게 우유 1L는 꽤 많은 양이다.
유통기한 안에 다 못 먹을 정도로 말이다.
어느 날은 우유를 먹고 제대로 배탈이 났다.
뉴스를 보니 xx우유의 제조 과정에서 모종의 문제가 있었고 최근 생산된 우유는 전량 폐기 처분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나는 먹었는데 말이다.
이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난 사촌에게 했더니,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는 듯이 나에게 말했다.
"쓸데 없다, 쓸데없어. 거 뭐 얼마나 차이난다고 거 하나 고르는데도 머리를 굴리쌓노. 피곤타 피곤해."
그 말대로 그는 마트에 갈 때마다 맨 앞에 놓인 우유를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턱턱 집어왔다.
그 일은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거의 일 년만에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입원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병원에 찾아가 보니, 병세가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식중독이라는데, 아무래도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가 원인이라는 듯했다.
병실 한쪽에 놓인 티비에서 나오는 뉴스에서도 마침 우유 얘기가 나온다. 얼굴이 익숙한 8시 뉴스의 앵커가 예의 힘이 가득 들어간 말투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선입선출을 무시하는 얌체 소비자가 극성입니다. 지난 3월 x마트에 따르면 선입선출 원칙을 무시하고 뒤에서부터 우유를 꺼내가는 얌체 소비자가 지난 해 동월에 비해 무려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화면이 전환되고 xx대 소비자학과 김병만 교수의 멘트가 이어진다.
"우유를 뒤에서부터 꺼내가려는 교활한 자들이 늘어나면, 우유 폐기량이 늘어납니다. 그럼 우유 값도 오를 거고요. 우유 1l를 정화하는데 15000l의 물이 필요합니다. 환경은 어쩔건가요? 문제입니다. 문제. 교활한 자들이 너무 많아요. 그냥 놓아둔 대로 가져가세요 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머리를 굴려대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