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

by 김동휘

"아이유도 읽었던 책인데요."


"읽는 척이나 한 거겠죠."


"아이유는 평소에도 책 많이 읽어요. 가사 쓰는 것만 봐도 책 많이 읽는 티가 나잖아요. 선경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요. 저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읽어본 적 없고, 아이유도 잘 몰라서요. 근데 그 느낌은 있죠. 아이유도 그 느낌이 있어요. 책 많이 읽은 사람 특유의 느낌."


"책 많이 읽은 사람 특유의 느낌이 뭘까요. 좋은 걸까요."


"그 뭐랄까. 정기가 쏙 빨린 느낌인데, 평소에 보면 정말 생기 없어 보이는데 막상 보면 되게 밀도 있게 사는 그런 스타일? 뉴진스로 치면 민지가 그런 느낌이 좀 나던데요."


"제가 아이돌은 잘 몰라서. 아무튼 백면서생같은 느낌이라는 거네요."


"그거랑은 좀 다른데 아무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아이유도 책을 많이 읽었을 것 같다는 거잖아요."


"제가 보기엔 그런데요."


(정적)


"하던 얘기 좀 해도 될까요?"


"예"


"네. 좀 실망하셨다면서요."


"네. 다 읽고 그냥 별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딱히 여운이 남거나 궁금하지도 않고 그냥 이런 소설이었구나 싶던데요."


"그게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럴수도 있어요. 책 하나 가지고 호들갑 떠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쨌든 그게 왠만한 장편소설 거의 열 권 분량인데 그걸 다 읽은 거 잖아요. 재미 없으면 못하죠 그렇게."


"어떻게 읽으셨어요?"


"아 저요? 저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원래 좋아하니까. 읽은지 좀 되긴 했는데 아무튼 도스토예프스키가 어쨌든 신학적인 배경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예술지상주의적인 작가들처럼 도덕적인 건 아예 배제하고 니힐리즘적으로 글을 쓰는 타입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 교육하듯이 성경에서 그대로 메세지를 차용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도스토예프스키는 낀 세대에요. 종교가 실제적 권력부터 사회적 아젠다까지 전부 틀어쥐고 있던 시대가 천 년 넘게 잘 작동해왔는데 갑자기 한 세대가 바뀔 때마다 목사가 무너지고, 다음 세대엔 교회가 무너지고, 그 다음 세대엔 교황이 무너지고, 그러다가 성경도 무너지고. 그걸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게 과학적으로 대처하고 이성적으로 결론 내면 뭐가 되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런 시대인거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거기 낀 세대죠. 분명히 종교적인 영향 아래에서 살아왔는데 머리가 크고 보니 세상을 그렇게 홀리하게 볼 수는 없는 상황인거겠죠. 거기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신학적인 입장과 이성적인 결론 사이에서 무언가 말해보려고 하는 글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인거고. 어떻게 보면 아직도 마찬가지니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읽히는 거겠죠?"


"저는 셋 째 아들이 좀 기억에 남아요. 소설에 보면 한 집 안에 살인범, 성폭행범, 알콜중독자, 우울증 비슷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잖아요. 근데 셋째 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혼자 성자처럼 나온단 말이에요. 그게 다른 사람들이랑 대비가 되니까 더 행동이 부각되는 것 같기도하고 아무튼 기억에 남는 건 셋째 아들이다."


"근데 아무래도 소설을 가지고 이렇게 우리끼리 얘기하는 게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원래 제가 읽고 느끼는 게 있었는데 뭔가 저 인간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계속 듣다보니 원래 했던 생각을 좀 잊어버리고 있다는 걸 제가 지금 느끼거든요."


"독서 모임에서 책 얘기 그만하라고 하시는 거에요 지금?"


"다른 책은 상관 없는데, 제가 아끼는 책이거든요. 이 책은. 근데 자꾸 그 님들이 하는 얘기들 때문에 제가 원래 이 책에 대해 가졌던 느낌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게 됐거든요."


"그럼 다른 책 얘기를 하죠. 얘기 해보고 싶은 책 있으면 말하세요."


"이상은 어때요?"


"날개 이상이요?"


"네"


"이상은 원래 그림 그리던 사람이었던 게 티가 나죠. 회화 예술에서는 진작부터 디테일이나 핍진성이 별 가치가 없어졌잖아요. 그런 스타일을 글에도 그대로 가져와서 디테일 같은 건 신경 안쓰고 그냥 느낌대로 써버리잖아요. 주제에 있어서도 회화 예술 스타일을 따라간게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일상적이면서도 예술 소재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왔던 걸 주제로 쓰고요."


"갑자기 든 생각인데, 결국 문학도 그런 쪽으로 가게 될까요?"


"그건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씨도 모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도 모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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