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높은 기온이 예보된 7월 말 어느 날의 오후였다. 허리가 굽은 노인 하나가 어디 뛰쳐나가기라도 할듯이 대청마루에 신발도 안 벗고 걸터앉아 담 너머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논밭을 마뜩찮은 눈길로 지켜보고 있었다.
노인의 옆에 앉은 다박머리를 한 오척 꼬마는 좀이 쑤시는 듯이 다리를 배배꼬며 스마트폰을 뺏긴 설움을 뇌까릴 태세를 갖추었으나 바투 앉은 노인의 드레진 태도에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불만스레 눈알을 굴리는 중이다.
"삼촌은 언제와요?"
"그시기 거 갔다 온다 안혀. 밥 먹기 전에는 들어오겄지."
노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리를 더 배배꼬며 꼬마가 말했다.
"전화해보면 안 돼요?"
"뭣하러 전화를 한다냐. 때 되면 오는 것이지. 왜? 거시기 심심하냐?"
"삼촌이 과자 사온댔는데."
"과자도 사온다냐?"
"네..."
"옆집 개 보러 가도 돼요?"
새삼스럽게 얼마 전 동네 구멍가게에서 먼지 쌓인 과자를 사왔다가 혼난 기억이 난 꼬마가 노인의 머리에서 과자에 대한 생각을 지우기 위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개가 어딨다냐. 다 그 거시기했지."
"개 없어요?"
"워따 사람도 없는데 개가 어딨디야."
"옆집 할머니 있잖아요."
"거시기 심심해서 그러냐? 삼촌한테 전화 해볼티냐?"
꼬마는 말을 돌리는 노인을 보며 옆집 할머니가 죽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증조할머니가 죽었을 때도, 몇 달 전 당뇨로 큰 집 친척 한 명이 죽었을 때도 아무도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얘기가 꼬마 앞에서 나올성 싶으면 가각이 화제를 돌리곤 했다.
"옆집 할머니 죽었어요?"
"누가 그러드냐?"
"엄마가요."
사실은 아니었다. 거짓말과 죄책감 사이의 연결 고리가 자리 잡을 만큼 세상을 살지 않은 꼬마 답게 챗GPT가 답변의 공백을 견디지 못하고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듯이 간대로 말을 뱉어버렸다.
"야그야, 그런 거는 거시기 신경 쓰덜 말고 우스운 야그나 해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