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35도쯤 되면 평소처럼 집 근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유난히 햇볕이 쨍하던 날 집 근처 공원의 트랙을 다섯 바퀴쯤 돌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그곳은 바닷가쪽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아파트 단지 밀집지역의 통행량이 만나는 곳으로 12차선 쯤 되는 도로가 교차로 연결되어 있는 꽤 넓은 도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였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그 때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져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고 균형 감각이 사라지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이, 옆에 있던 전봇대에 기대지 않았으면 그대로 맥없이 쓰러질 뻔했다.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일에 부들부들 다리가 떨렸다. 갑자기 이대로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것은 몰라도 아마 더운 날씨에 무리한 운동을 한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뉴스에서도 종종 한여름에 마라톤을 뛰던 사람들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초록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금 정신을 잃냐 잃지 않냐의 기로에 서 있는데 이대로 횡단보도를 건너가다가 횡단보도 한 가운데에서 정신을 잃기라도 하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았다.
그곳은 고속도로와 밀접한 곳이라 그런지 아래 시야가 확보되는지 의심스러운 대형 트럭들이 꽤나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었고, 교통량도 꽤 많은 곳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하고 잠시 전봇대에 기댄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잘 생각해보니, '죽으면 죽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트럭에 치여 죽을 운명이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죽을 운명이면 어차피 가만히 인도에 서 있어도 트럭이 들이 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원시인이 가졌을 법한 운명론 때문에만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다.
이봉창 의사의 말처럼 삼십년 쯤 살았으면 세상의 쾌락은 그럭저럭 다 맛 본 셈이니 죽어도 별 여한이 남을 것도 없다. 실제로 체감하기도 그렇다. 어릴 때처럼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하면서 비현실적으로 -과연 지금 가진 기대감은 현실적인 걸까? 잘 모르겠다- 큰 기대감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인지 어떻게든 살아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딱히 없다.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살다보면 살길 잘했구나 하는 순간이 있는 것이지만... 죽으면 죽는 것이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어 횡단보도를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