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by 김동휘

내가 K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그 당시 6집을 내고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있던 에픽하이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가까워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K는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시집을 읽었고 종종 시에서 가져온 비유를 들며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식의 조숙한 결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학창시절 나에게는 매 시험이 다가올 때마다 수학이 걱정거리였다. 중간고사의 평균 점수를 끌어 내리는 것이 수학이었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가장 재미 붙이기 힘든 것도 수학이었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에게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K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50분의 시험 시간이 너무 길다는 듯이 시험이 끝날 때쯤엔 이미 모든 문제를 풀고 잠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항상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몇 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K는 경북에 있는 한 의대에 입학했다. 그곳이 원래 우리가 살 던 곳에서 꽤 먼 곳이었으므로 K와 나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얼마 뒤 입대한 내가 철원의 군부대에서 1년 9개월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거의 2년간 보지 못했던 K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만난 K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머리를 장발로 기르고 수염도 덥수룩한 것이 서울역 구석에서 방금 걸어온 노숙자 같은 모습이었다. 추레한 차림과 떡진 머리는 그 장발과 수염이 멋을 내려는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혐오감이 들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록 외양 뿐 아니라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껴졌다. 중학생때부터 이미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확신에 차 말하던 그가 망설이는 태도로 말했다. "다음 학기에는 유급은 안 당할거야...아닌가?" 그 말을 하며 내 눈치를 살필 때는 약간의 비굴함 마저 느껴졌다. 낯설기도 낯설었지만 이해가 가지도 않는 태도였다.


근처 호프집에 들어가 소맥을 타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나는 K의 새로운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은 K가 그날 꺼낸 이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고 십 수년 간 K와 가깝게 지내며 알게 된 K의 속사정과 그날 들은 이야기들이 퍼즐처럼 짜맞춰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 할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적을 수는 없지만 나는 K의 어두운 비밀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나에게 그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는 자못 당당해 보였다. 당시의 나는 그것이 마음 속 깊은 불안감을 가리기 위한 너무나 미약한 당당함임을 알아챌만큼의 인생 경험이 없었다. 그 때의 나는 K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가장하는 것과 숨기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K의 그런 비밀은 K의 발을 얽매는 족쇄가 되었고 사춘기를 지나며 많은 사람들이 내려놓는 무언가를 내려놓지 못하도록 K를 닻처럼 잡아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K가 내려놓지 못한 그것을 순수함에 가까운 것이라고 봐야 할지, 무책임함 혹은 미성숙함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인 것을 한 단어로 뭉뚱그리려 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K와 같은 비밀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K보다 성정이 선하다거나 똘똘해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내가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일을 K는 직접 행동으로 실천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K의 비밀을 들었을 때 그 비도덕성보다는 용감함에 주의가 끌렸다. 하지만 그러한 솔직한 마음과는 별개로 차마 그 일을 칭찬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머릿 속 어딘가에서는 K의 부도덕함을 비난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지만 나 스스로의 부도덕함을 무시할 수 없던 나로서는 차마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비록 내가 똥 묻은 개일지라도, 겨 묻은 K를 나무랐어야 했던 것 같다.


이후로도 K와는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K의 자세한 근황은 굳이 묻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K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심장을 누가 움켜쥔듯이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결국은' 이었다. 지난 몇 년간 K의 생활은 위태로웠다. 가까이서 K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본다면 누구나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만큼. 그럼에도 K가 결국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의대생, 은수저, 명석함 같은 그럴듯한 외양 탓에 그 위태로움이 그저 잠깐의 배부른 방황처럼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충격이 지나가고 나서는 좀 더 본질에 가까운 것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K를 자살로 이끈 본질은 무엇일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K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주제넘더라도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K는 그 비밀 때문에 세상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대신 K는 비슷한 종류의 비밀을 비슷한 방식으로 품고 있는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비밀은 더 많아져갔다. 그럴수록 그가 잠시라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은 더 줄어들었고 잠시라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역시도 더 줄어들었다. 혼자 방 안에 있는 것은 편했을까? 그랬다면 그런 중독을 달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K에게


니 잘못이 아닌 걸 알지만,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런 세상에서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같은 고민을 했었는데 말이야. 시간이 약인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찾고 있던 출구의 실마리가 결국은 손에 들어와버린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은 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한 발을 뻗어 영역을 넓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어쩌면 그냥 내가 그럴 수 있을 만한 상황에 있기 때문일까?


그런 것은 먹물 짙은 이유이고, 호쾌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방에 쳐박혀서 시간 축내는 샌님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지, 당장 돈 없으면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을 판인데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붙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나. 어차피 산다는 건 다 비슷비슷해서 오질나게 운 좋은 인간 몇을 빼놓고는 다들 가슴속에 사연 몇 개는 묻어두고 사는 법이다. 혼자 생각만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결국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 추악하더라도 그렇게 살기 때문에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


그 말에 현학적인 말을 지껄이기 좋아하는 내가 몇 마디를 덧붙인다면, '추악한 것이 있기에 아름답고 선한 것이 있고 추악한 것 속에서도 어딘가 선의에 가까워보이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설령 지금의 나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그 일이 일어났음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그런 의미가 악함 속에서도, 죄 속에서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는 건,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경험해본 바고. 이런 말을 하는 심경이 복잡하다. 결국은 그 죄책감 비슷한 무언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듯이 자기 자신을 조그만 곳에 가둬놓듯이 평생을 살아간 사람들을 보았고, 그 죄와 악 속에 담긴 선의는 끝내 드러나지 못한 채 눈물을 남기고 끝내는 아직 창창했던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보았으니까. 죄와 악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것은 정말로 나쁜 것이니 생각조차 가지지 말라고? 죄책감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죄에 따르는 응당한 대가이니 죽을 때까지 품고 살라고? 하지만 모르겠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죄를 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 망가지지 않을 수 있을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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