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by 김동휘

칼 같은 각으로 가르마를 타고 정장을 갖춰 입은 한 남자가 시청 건물 안에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도 생각했던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듯한데, 당황스러워하는 그의 표정과는 반대로 그의 맞은 편에 서 있는 나이든 남자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듯이 편안한 표정이다. 앞에 있는 벽 속에는 큼지막한 모니터가 내장되어 있고 화면에는 관할시의 지도가 띄워져 있다.


"여기에 짓겠습니다."


"여기는 공항 활주로랑 너무 가까워서 곤란합니다. 물론 이륙 방향과는 상관 없는 위치라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비상시에 전투기가 이렇게 -그가 지도 위로 손가락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륙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위로 전투기가 지나다녀야 하는데, 5층짜리 건물은 몰라도 45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는 없죠."


아직까지 가르마를 탄 남자는 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 정도 변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바이고 무엇보다 그는 입시부터 자신의 사업까지 원하는 대로 모두 성취해 온, 티내지 않으려해도 숨겨지지 않는 자신감에 찬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에 짓겠습니다."


"여기는 거주민들 반대가 심할겁니다. 어? 설마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건가요? 요즘 시대엔 안 돼요. 지금 거기 부정회계로 엮을 소스는 이미 다 확보되있는거 아시죠? 괜히 잡음 만들면 바로 타겟되는거에요. 그러게 말도 좀 착하게 하고, 웃으면서 좀 사셨어야지. 안 돼요. 거긴."


가르마를 탄 남자는 화가 치밀었다. 연이은 거절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자신은 이렇게 아무한테서나 훈계를 들을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이 공격받는다는 것이 더 화를 돋우었다. 하지만 앞에 선 나이 든 남자에게서 음흉한 자기만족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그는 여전히 태평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준비해온 시나리오를 모두 소진한 그는 45층 건물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럼 20층으로 짓겠습니다."


"에이, 20층은 어디 아무나 짓습니까? 그것도 결국 사람 문제에요. 허가 받을 게 산더미고 기존 거주민들 협의도 이끌어내야 되는데 차라리 45층이면 '저 놈 참 야무지네' 하고 도와줄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누가 20층에 관심이나 가진답니까? 20층이 그리 짓고 싶으시면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서 내년 이맘때쯤 봅시다."


그는 더이상 분노를 참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연말에도 내년에도 찾아와 오늘처럼 허락을 구해야 할 사람을 앞에 두고 차분함을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생각한대로 잘 움직이는 사람으로 수십년을 살아온 그가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런 실수를 할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다음 말에 냉소가 섞여들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건물을 짓지 말라고 하시니, 그럼 있던 건물을 부수겠습니다."


"어떤 건물을 부수겠다는겁니까?"


"여기는 어떻습니까?" 그가 지도의 한 곳을 아무렇게나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곤란합니다. 거기 지금 몇 명이 사는지는 알고 말하는 겁니까? 그 건물에 관련된 사람들의 친인척, 그건물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건물에 익숙한 시민들까지 포함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그 건물에 엮여있습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신은 이 나라에 발붙일 곳이 없어질지도 몰라요."


앞에 선 나이든 남자의 말을 들으며 어느새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가 구상했던 거대한 목표는 모두 거절 당했고 앞에 있는 남자는 설득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철저히 준비한 시나리오도, 분풀이하듯 내뱉을 감정도 남지 않은 그는 그냥 떠오르는 말을 뱉었다.


"그럼 우리 동네 뒷산에 지난 태풍 때 무너진 가로수가 아직도 꺾인채로 방치되어 있는데, 그건 치워도 되겠죠?"


"그런 좋은 일을 하신다면,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도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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